시 쓰지만 ‘소설 주인공같은 삶’ 이야기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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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출판

시 쓰지만 ‘소설 주인공같은 삶’ 이야기 펼치다

■‘오월’ 전국 알린 김준태 시인 첫 소설집 출간
도서출판 b서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 펴내
장편액자·중편 구성…소소한 일상과 서사 투영
아픈 생 함께 해온 반려자 이명숙씨 삽화 70점도

김준태 시인이 첫 소설집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들고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표지
등단 56년차를 맞은 그는 광주·전남 대표적 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 참화를 모두 겪어 왔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오사카로 강제 징용돼 노무자로 일했고, 아버지는 일본 제국주의 전쟁에 강제 징병돼 오키나와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으나 심야에 천신만고 끝 탈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후에 보도연맹 사건(150∼200만 학살)으로 별세하는 등 온 가족이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을 비켜가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은 베트남전 참전과 5·18민중항쟁 때 그 광주학살의 참상을 만천하에 알린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발표, 수배자의 삶과 해직교사로서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현재도 그의 삶 한가운데는 5·18이 살아있고, 5·18 시민군들의 삶을 보듬어 안기 위해 꾸준하게 창작하며 노력해왔다.

그는 시를 쓰지만 꼭 소설 속 주인공같은 삶을 살아온 장본인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그가 소설을 들고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를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국내 유명한 시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30년 전 소설가로 데뷔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결과다.

주인공은 ‘참깨를 털며’와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등을 발표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전남 해남 출생 김준태 시인이 그다. 그가 445쪽 분량의 첫 소설집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도서출판 b 刊)를 펴냈다.

‘바람·구름·모래·도시’ 수록 이명숙씨 삽화(본문 229쪽).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7쪽 이명숙 작 삽화
표제로 쓰인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가 그의 소설 등단작이다. 표제에서 ‘오르페우스’는 그리스로마신화 영웅들 가운데서 특이하게 노래와 연주를 통한 음유시인으로 활약한 영웅을 지칭한다. 1995년 ‘문예중앙’ 여름호에 발표했던 작품이며, 광주에서는 생활정보신문인 사랑방신문에 3년 동안 70편을 시민들에게 소개한 바 있다. 그 뒤로 20편을 더했다.

더욱이 이번 소설은 5∼7분이면 모두 읽을 수 있는 분량의 장편 액자소설로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와 중편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로 구성됐다.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에는 90편의 액자소설이 실렸다. 액자소설은 소설 속 소설로 독일에서 유행했고, 근래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는 15년이 지나도 여전히 광주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드러낸다.

이 소설에는 실제 인물들인 자신을 포함해 성악가와 화가, 스님, 목사 등 5명이 등장, 새로운 소설적 발상 전환을 촉구한 작품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야말로 시와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분되지 않을 뿐더러 시와 소설이 한몸임을 설파한다.

이어 ‘이어도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작가의 페르소나인 허만중씨가 화자로 등장해 광주와 서울, 미국과 베트남, 독일 베를린 등 세계 곳곳에서 과거와 현재를 망라한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화자·작자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 작품은 30년의 격차를 두고 있지만 시인이 부르는 노래이자 불어넣은 시대의 호흡으로 연결돼 있다. 그의 노래에는 1980년 오월 광주의 상처가 여전히 꿈틀대고 그로 인한 참다운 세상에의 갈구와 광주공동체를 구현하려 함께 한 이들의 발자취를 망라해 그 인물들의 역사를 이기고자 했던 역동적 삶과 의지를 때론 ‘시’가 되고, ‘소설’이 됐던 문학적 행간에 담아낸 것이다. ‘노래’라고 하는 시와 ‘이야기’라고 하는 소설을 통해 팔순을 앞둔 시인이 오르페우스의 신화적 상상력에 비로소 가닿고자 하는 그 마음의 언저리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소설집에는 그의 평생 반려자로 동고동락해온 이명숙씨의 삽화(그림) 70점이 더해져 의미를 더한다. 누구보다 그를 잘 알기에 가벼운 터치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아픈 생의 마디마다 함께 해온 삶의 관록과 진정성이 베어난다.

‘님’ 336쪽 이명숙 작 삽화
‘포옹’ 267쪽 이명숙 작 삽화
너무 가난해 1년에 장편 10권씩 펴낸 발자크가 총 100권의 저서를 남기고 사망했는데, 후에 빅토르 위고가 그가 사망했을 때 그의 손을 보고 이 손으로 이렇게 많은 작품을 썼다며 통곡했다는 일화를 소개한 김준태 시인은 “‘함께 살자’ 그것이 광주정신이다.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것, 그것이 1980년 5월 절대 광주공동체였다. 이승철 시인에 의하면 국내에서 소설은 남편이 쓰고, 그림은 아내가 직접 그린 작품 사례는 없다고 들었다. 그렇게 의미깊은 이번 작품집은 집사람에 헌사의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조기조 도서출판 b대표(시인)는 표사를 통해 “저자는 ‘오르페우스는 죽지 않았다’를 통해 5·18광주에서 시작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 전체로, 세계로 자신의 문학을 확장해 왔다”면서 “이 소설집에 실린 두 소설은 광주를 뜨겁게 경험했던, 그리고 이제는 원로 시인이 된 김준태의 삶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을 넘어, 오늘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극적인 서사로 아름답게 거듭나고 있다.

오르페우스는 단순히 그리스 신화에서 빌려온 인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상이자, 사랑과 생명과 평화의 생명체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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