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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불법 비상 계엄 1년을 앞둔 2일 광주 송정역에서 시민들이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를 시청하고 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
특히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힌 5·18 피해자와 유족들은 물론, 억울한 누명과 연행·구금으로 모진 시간을 견뎠던 이들에게 ‘비상계엄’은 40년간 가슴 속에 묻혀있던 아픔을 다시 일깨웠다.
2일 이경희씨(65·여)는 지난해 12월3일 TV 자막으로 ‘비상계엄 선포’ 문구가 등장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숨이 턱 막히고 몸이 떨릴 정도였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고 몸서리쳤다.
이씨는 1980년 5월 당시 차명숙·박영숙씨 등과 함께 가두방송을 맡아 시민 참여를 호소한 인물이다.
5월27일 새벽, 홍보차량에 올라 마지막 항쟁의 밤을 기록하며 오전 3시까지 광주 시내를 돌며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총칼에 쓰러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지킬 것입니다. 최후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마지막 가두방송을 했다.
이씨는 “12·3 비상계엄 선포 문구를 보면서 45년 전의 장면이 순식간에 겹쳐 보였다”며 “눈을 몇 번이고 비볐지만 화면은 그대로였다. ‘끔찍하다’ 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비상계엄이 수 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그날의 밤은 쉽게 지나지 않았다.
이씨는 “5·18을 겪은 지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가 마주한 현실이 맞는지 당황스러웠다”면서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무효화 됐지만 온 몸에 소름이 끼쳐 며칠 밤을 설쳤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어이없고 황당함 뿐이었다. 운동권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 5·18을 경험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고 토로했다.
한동안 평온을 되찾은 줄 알았던 몸은 비상계엄의 기억을 정확히 붙잡고 있었다. 밤마다 엄습하는 공포감에 윤석열이 탄핵될 때까지 금남로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린 집회에도 단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80년 5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했던 현장에 다시 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회에 참여하자는 권유도 많았지만 집 밖을 나가지 못한 채 웅크리고만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진행 중인 내란 주도세력 재판 과정 역시 그에게 또 다른 무력감을 안겼다.
이씨는 “비극이 벌어진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내란 세력을 두둔하거나 5·18의 진실을 믿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참담하다”며 “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도 법과 권력을 쥔 사람들이 내란 공범처럼 행동하니 무력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끝으로 “5·18과 같은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국민의 안전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냉혹한 심판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광주비상행동은 ‘12·3 비상계엄’의 아픔과 고통을 상기하고자 오는 3일 오전 11시 5·18민주광장 상무대 앞 계단에서 ‘빛의 혁명 1년, 광주공동체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이날 강기정 광주시장과 위경종 전 비상행동 대표, 조영대 신부, 제주항공참사 유가족 등이 참석한다.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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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3 (수) 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