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산책] 백악지장 거문고이야기 서덕은 시립국악관현악단 차석 |
| 2016년 06월 30일(목) 1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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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덕은 시립국악관현악단 차석 |
나이가 먹어갈수록 둔탁하지만 합주할 때 전체의 뼈대를 세워가는 파장대가 깊은 6줄 거문고 소리가 좋다는 친구의 편지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거문고는 가야금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우리나라 현악기중 하나이다. 거문고의 줄은 여섯 줄이요, 가야금은 열 두 줄이다. 거문고가 그윽한 저음을 특색으로 한다면 가야금은 투명한 청성에 유별난 맛이 있는 악기이다. 흔히 거문고는 남성적이고 가야금은 여성적이라고 표현하며, 거문고를 서양악기의 첼로에 비하기도하고 가야금을 바이올린에 비하기도 한다.
거문고는 16개의 괘가 순차적으로 나열돼 음정을 조절하고 가야금은 안족(雁足) 이라고 하는 받침대가 12줄을 지탱하고 있고 거문고는 술대로 줄을 뜯거나 튕기지만 가야금은 맨손가락으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낸다.
이처럼 거문고와 가야금은 같은 류(類)의 악기이면서 서로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 악기 중 우리의 고유한 음악정신에 한발 가까이 밀착해온 악기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거문고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거문고는 그 탄생일화 부터가 신비의 베일 속 에 싸여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의 왕산악이 거문고를 타니 소리에 취한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개국 시조 들의 탄생신화처럼 신화적인 여운을 남기는 거문고는 우리의 음악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고구려를 넘어 신라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인을 남기고 특히 신라에서는 극상(克相)과 극종(克宗)이후 이미 거문고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을 만큼 널리 생활화되었었고, 유교사상이 풍미하던 조선시대에는 거문고를 통하여 인격완성을 도모하려는 경향이 농후 했으며 지식계급인 선비층에서는 으레 거문고를 수양의 상징처럼 늘 서책과 함께 옆을 지키게 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보아 거문고는 우리 음악의 대마루이자 음악정신의 심볼임에 틀림이 없다.
이렇듯 거문고는 파적(破敵)의 방편일뿐더러 세상의 이치를 터득케하는 신비의 영매(靈媒)이기도 했다. 그래서 거문고 소리 둥둥 울리는 그들의 서재는 지란지교를 즐기는 풍류방이기도 했고 자연의 섭리에 자신을 동화시키며 오묘한 도(道)를 깨치려는 참선의 도장이기도 했다. "거문고줄 골라 놓고 홀연히 잠이 드니 시비(柴扉)에 개 짖으며 반가운 손 오노매라" 라는 옛시조에서는 전자의 청유(淸遊)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고 "세사는 금삼척이요 생애는 주 일 배(酒一杯)라" 라는 시조에서는 이미 짧막한 금삼척(琴三尺)으로 세상사를 미루어 달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살아가는 요즘, 공부에 몰두하다 헛된 생각이 들 때 할 수 있는 일이 무었이 있을까? 재미나는 일은 없을까? 잡념을 싹 가시게 하는 일은 없을까? 이러한 모든 번뇌를 옛 성현들은 거문고연주로 이겨냈다. 공자 문하 70여 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금 (琴)을 연주하고 시를 외웠다고 한다. 속세에 시달려 한참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데 더없이 좋은 것이 거문고의 느짓한 선율이라는 사실을 우리네 선조 대부분이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음악을 가만히 마음으로 듣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음악을 연주하며 파묻혔다. 거문고연주이야기가 나온 김에 ‘오능(五能)’이라 해서 연주자가 가져야 할 다섯 가지 자세를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첫째 앉는 자세를 안정감 있게 한다. 둘째 시선이 한곳을 향하도록 한다. 셋째 생각을 한가롭게 한다. 넷째 정신을 맑게 유지하도록 한다. 다섯째 지법을 견고히 하도록 한다. 이처럼 거문고를 연주할 때에는 다섯 가지 태도를 강조하여 연주해야 한다.
거문고는 상징적인 악기이다. 거문고는 선비들이 늘 곁에 두고 속된 생각이 들거나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 악기를 타면서 정신을 가다듬곤 하는, 단순히 기교를 연마하는 악기로만 생각하지 않고 악기 이상의 도(道) 를 싣는 물건으로도 인식했던 것이다. 이처럼 ‘손끝의 음악’이 아닌 ‘마음의 음악’을 강조한 선인들의 거문고를 향한 정신을, 지금 이 시대로 끌어와 새겨 볼 만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