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산책] ‘문화 식민주의’를 경계함 윤창식 초당대 교수 |
| 2016년 07월 31일(일) 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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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실증주의 역사학자 랑케(Ranke,1795-1886)는‘젊은이를 위한 세계사’에서 "모든 고대사는 하나의 호수로 흘러서 로마사로 들어가고, 전체 근세사는 로마사 속에서 다시 흘러나온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감히 로마인이 없었더라면 역사 전체가 가치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라고도 말한다.
물론 서양사의 흐름상 로마의 역사가 全유럽, 나아가 전세계의 역사에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은 상당 부분 사실일지라도 랑케의 실증적 역사관이 반드시 순수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흔히 회자(膾炙)되듯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주장도 언뜻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일정부분 제국주의적 사관(史觀)의 냄새를 풍긴다.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을 교묘히 이용하여 게르만 우월주의를 표방한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옹호하는 일부 사학자들의 식민사관을 두고 하는 말만은 아니다.
문화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문화는 물과 같아서 흐른다는 것은 맞지만 때론 역류하기도 하며 뒤섞이기도 하고 배척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문화는 단순히 물의 속성보다는 자연생태계의 생물종(種)을 닮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만약 자연생태계와 유사한 문화생태계가 너무 급속히 변화를 일으키면 그것은 정상변이라기 보다는 돌연변이가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애초부터 질적인 ‘높낮이’를 전제하고 문화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의 초고층빌딩이 동남아의 수상가옥보다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를 ‘정책적으로’ 다룬다는 것도 때로는 문화의 본질을 상당 부분 왜곡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자생적이거나 토착적인 문화가 가장 건강하고 바람직한 모습일 터이다. 물론 문화순혈주의(純血主義)도 생물의 동종교배(同種交配)처럼 위험하지만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급조되거나 무분별한 다문화정책도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잘못 뿌려진 씨앗은 언젠가 ‘악의 꽃’으로 피어날지 모른다. 요즘 다시 불붙기 시작한 미국의 뿌리 깊은 흑백갈등도 인종 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문화에 등위를 매긴 결과일 터이며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의 소수민족 이주정책이 최근 니스해변 참사의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한편 대부분 관상용이나 식용으로 들여온 것이겠지만 우리나라 전역에 이름도 생소하기 짝이 없는 외국종 동식물들이 급속도로 퍼져 한반도의 자연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환경부가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등 동물 6종과 서양등골나물, 미국쑥부쟁이, 영국갯끈풀 등 14종의 식물을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알 수 있듯 보기에도 결코 아름답지 못한 생소한 들풀들이 엄청나게 자라고 있다. 시집갔다가 친정 다니러 오는 누나를 고향집 보리밭 근처에서 기다리는 어린 동생처럼 귀여운 우리의 들풀과 토속동물들이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엄청난 파괴력으로 식민의 땅에 진주하듯 퍼지기 시작한 외국생물종에게 자리를 모두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
힘센 나라의 문화가 약소민족에게 급속히 전파되는 과정에는 그 나라의 언어도 함께 따라오게 마련이고, 상대적으로 약한 토착민의 문화나 언어는 이상변이를 하다가 점차 힘을 잃고 소멸할 수도 있다. 언어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에 6800여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금세기 말이면 그 중 90%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언어(문화)다양성이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는 바야흐로 글로벌시대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강대국들의 입장에서만 유효한, 편리한 논리일 수 있다. 현대라는 이름의 세상은 정신없이 어디론가 쏜살같이 내닫는다. 그 끝나는 곳이 어딘지 모를 무한 질주, 폭주족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도대체 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폭주의 신화 앞에서 ‘멈추어 선 것’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버스정류장 한켠에서 종일토록 쪼그리고 앉아 푸성귀 몇 잎 뜯어다가 팔고 있는 할머니의 바구니를 단속원이 냅다 걷어차듯, 그저 실용적이고 ‘돈이 되면’ 영혼마저도 팽개친다는 즉물적(卽物的) 가치관은 이른바 문화국가를 지향하는 성숙된 태도는 아니다. 문화는 자생하는 들꽃처럼 자연스럽게 피어나도록 하는 게 맞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