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리말과 한글

박순원 시인·광주대 교수

따라서 훈민정음은 우리말뿐만 아니라 한자음과 이웃의 여러 나라의 언어음도 표기할 수 있도록 창제된 표음문자였다. 특히 당대의 한어(漢語)의 정확하고 통일된 표기법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표준 한자음을 설정하기 위한 ‘동국정운’ 편찬과 표준 중국자음의 제시하기 위한 ‘홍무정운역훈’ 편찬
2017년 06월 29일(목) 17:27
개그콘서트에 ‘아무 말 대잔치’라는 코너가 있다. 말 그대로 개그맨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아무 말로 웃음을 주는 장면이 빠르게 펼쳐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코너 한 장면 중, 세종대왕이 영어를 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 외국어를 쓰실 리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구성한 장면일 것이다. 웃자고 한 이야기에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다소 민망스럽기는 하지만 오늘은 이 장면의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하자.

한글은 우리말이 아니다. 말을 적을 수 있는 문자체계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혼동한다.

예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첫 단원에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라는 글이 있었다. 이 글은 세계화 시대에 타문명의 유입을 막을 수는 없지만, 스스로 아끼지 못한 문명은 외래 문명에 텃밭을 빼앗기고 말 것이라는 우려와 내가 당당해야 남을 수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예전에 한참 우리 생태계에서 큰 문제로 등장했던 황소개구리와 청개구리의 관계를 비유해서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을 쓰신 최재천 선생님은 생물학을 전공하신 과학자로서, 우리의 환경과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런데 이 글도 이와 같은 혼동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글의 말미에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한글이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일은 새 시대를 살아가는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우리 한글을 바로 세우는 일에도 소홀해서는 절대 안 된다”라는 이 글의 핵심적인 주장이 등장한다. 문제는 ‘영어’와 ‘우리 한글’이 같은 층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어’는 ‘우리말’에 대응하는 말이고 ‘한글’은 말을 적는 표기체계이다. 따라서 ‘한글’에 대응하는 말은 ‘영어 알파벳’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러한 혼동은 종종 접할 수 있다. 나는 한글날에 방송 기자가 시내 중심가에서 외래어로 된 간판들을 가리키면서 ‘세종대왕께서 보신다면 통탄할 일이다’라는 보도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우리글을 만드신 분이지 우리말을 만드신 분이 아니다. 이와 같은 기자의 보도야말로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의 원래 이름은 훈민정음이었다. 강만길 선생님은 ‘한글 창제의 역사적 의의’라는 글에서 한글이 국왕의 시혜적 산물이 아니라, 민중들의 전리품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고려 후기 무신의 난 이후 계급 사회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역성혁명 이후 거듭된 왕자의 난을 지켜본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백성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의 필요성 대두되어 한글이 창조됐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가 한글 창제의 의의를 대내적 문제 해결의 차원에서 찾는 것이라면, 당시 외교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필요성에서 창제됐다는 견해도 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이웃 나라들과의 원만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 시책의 하나였다. 외교정책을 활발하게 전개하기 위해서는 담당자들이 이웃 나라의 언어에 능통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중국과의 외교는 국운과도 직결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우리말뿐만 아니라 한자음과 이웃의 여러 나라의 언어음도 표기할 수 있도록 창제된 표음문자였다. 특히 당대의 한어(漢語)의 정확하고 통일된 표기법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표준 한자음을 설정하기 위한 ‘동국정운’ 편찬과 표준 중국자음의 제시하기 위한 ‘홍무정운역훈’ 편찬 등은 당시 중국과의 원활한 외교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절실한 문제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훈민정음 창제 정신에서 주체성과 자주성 등을 찾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훈민정음이 한글로 이름이 바뀌면서 덧붙여진 근대적 사유의 부산물일 뿐이다. 물론 훈민정음은 그 결과물의 우수함으로 인하여 창제 의도를 넘어서 차츰 그 쓰임이 확장되고 우리의 문자 생활을 모두 담당하는 역할을 무리 없이 감당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주체성과 자주성의 보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글과 우리말을 혼동하는 엉터리 주체성 자주성에서 벗어나 개방적인 차원에서 연구한다면, 한글을 국제화할 수도 있고 그 활용을 폭넓고 다양하게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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