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송영옥 탄생 100년전’을 통해 본 재일 디아스포라의 삶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

2017년 07월 06일(목) 16:52
우리나라 서양화의 역사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서구의 미술양식을 배워 온 유학파들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유학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작가들은 대부분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작가적 명성을 쌓아 국내 미술계의 기득권으로 자리 잡아 온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유학했으나, 해방 후 생계나 정치적 문제, 한반도의 정치상황, 재산이나 화물 수량 지참 제한 문제 등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은 재일 1세대 작가들의 경우는 정반대의 삶을 살다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일 디아스포라의 사회상은 다른 재외 한인의 사회상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과거 식민국과 피식민국의 관계, 남한과 북한의 관계 등에서 기인한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옛 식민지 종주국에서의 디아스포라 생활은 국가와 사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엄청난 억압과 무의식적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차별과 억압과 함께 재일 작가들은 일본 미술계에서 차별과 배제를 겪었으며, 국내 미술계의 무관심 속에서 제대로 된 평가와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민지 시대와 해방 후 남북 분단의 틈바구니 속에서 험난한 역사적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어낸 비운의 재일 작가 송영옥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리게 돼 소개하고자 한다. 하정웅컬렉션 ‘송영옥 탄생 100년전’으로 오는 9월 17일까지 농성동에 위치한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린다.

송영옥(1917~1999)은 1917년 제주태생으로 소학교 4학년 때 측량기사인 부친을 찾아 오사카로 건너가 1944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간사이(關西)종합미술전, 일본 앙데팡당전에 출품하며 화가의 길로 들어선 후 1957년부터는 동경에서 자유미술협회전과 평화미술전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는 해방 후 두 차례 귀향을 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조선 국적에서 한국(남한) 국적으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총련계 사람으로 분류돼 고향에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첨예한 남북 이데올로기의 대립 상황 속에서 남과 북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고, 재일 조선인으로서 차별과 소외, 가난이라는 극한의 현실 속에서 부유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격변기 속에서 겪은 자기 정체성의 박탈과 가혹한 현실의 무게는 고스란히 작품에 스며들어 상처받은 자들의 처절한 외침이나 절망적 상황에서의 몸부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고발 등을 주제로 다루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신이 직접 체험한 고통의 무게를 실은 작품들은 단순한 문제의식의 표출을 넘어서 보는 이에게 그 고통과 처절함이 절절히 전달된다는 점이다.

송영옥은 한번 제작해서 출품한 작품을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넣기를 서너 차례나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아생전 서너평 남짓한 숙소이자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 갈 정도로 가난했던 처지 때문이기도 하고, 작품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작가적 소신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60여점 정도 될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다행히 대부분의 작품을 재일교포 하정웅이 수집해 광주시립미술관(49점),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5점), 수림문화재단(1점) 등에 모두 기증하였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으로서 1958년부터 1992년까지의 작품 50여점으로 송영옥 예술세계 전체를 살필 수 있는 기회이다.

송영옥의 작품은 일제 강점기와 남북 분단의 틈바구니 속에서 재일 디아스포라로서 받았던 고통과 상처에 절규하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자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일본 내에서의 차별과 국내 미술계의 무관심,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한 평가절하 내지 외면 등으로 송영옥과 같은 재일 1세대 작가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송영옥 탄생 100년전’과 같은 전시를 계기로 근현대미술사의 블랙홀과 같았던 재일 1세대 작가들에 대한 자료수집과 연구, 재조명활동이 촉구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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