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공사 중 도로 안전, 우리가 책임집니다" ㈜상동방호시설 박도진 대표… 충청도 등 누벼
김주연 기자 sense@gwangnam.co.kr |
2017년 08월 20일(일) 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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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진 ㈜상동방호시설 대표 |
이런 공사 현장마다 늘 필요한 게 있다. 공사 도중 발생하는 먼지 등은 물론 돌이나 토사가 떨어지지 않도록 도로 가장자리에 세워지는 방호벽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낮은 산지가 많아 지상 4m 높이로 설치되는 게 대다수지만, 해안 절벽 도로 근처에서나 높은 산에서는 최대 12m짜리 방호벽도 볼 수 있다.
이 방호벽은 건설업체가 건물을 지을 때도 쓰인다. H빔의 버팀목을 할 쇠기둥을 세우고 크레인이 가운데 토류판을 아래서부터 차곡차곡 끼워 넣어 설치된다. 건물의 경우 뼈대가 세워질 동안, 도로는 산의 경사면이 매끈하게 다져질 동안 이 방호벽은 안전을 책임진다. 산 지면 공사가 완료된 후 다시 쇠기둥과 토류판 등이 철거된다.
건설업체가 부가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전문으로 하는 곳이 흔치 않다. 특히 논·밭 등 평지가 많은 광주·전남 지역에는 현재 3곳만 이 사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숙련도가 필요한 사업인 탓에 지역 세 업체 모두 업력이 10여년에서 25년에 달한다.
지역 전문업체들 중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에서 방호벽 사업을 펼치는 업체를 만났다. 광주 암파쇄 방호벽 전문업체 ‘상동방호시설㈜(대표 박도진·54)’이다. 이 업체는 암파쇄방호벽 사업뿐 아니라 및 강재·목재, 자재 임대 등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로 16년차다.
공사 현장 근무가 많아 손이 성치 않은 경우가 태반이지만 박 대표의 손은 사무직 근로자만큼 말끔한 편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박 대표는 “원래 보험사 법인 영업팀에서 근무, 건설업체를 주로 도맡았다”며 “20년 전쯤 퇴직 후 사업을 준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 근무시절 지역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인명 사고 등을 눈으로 목격, 직접 처리했다. 지금은 지자체나 도로공사에서 안전모 착용 등 현장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현장에서는 인부들이 안전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일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천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했다.
퇴직 후 지인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관광숙박업에 뛰어들었지만 IMF가 터지면서 사업을 실패했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장성 백양사로 드라이브를 간 박 대표는 인근에서 한창 진행 중이었던 도로 공사 현장을 보게 됐다. 역시나, 인부들이 안전모는커녕 작업용 신발이 아닌 운동화를 신고 가파른 산 위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인부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 같아 차에서 내려 근처에 있던 현장 담당자에게 갔다”며 “‘보험사 직업병’이 남아있어 인부는 저렇게 일하면 사고가 나지 않는지, 몇 명 부르는지, 인건비는 얼마인지, 쇠가 무거워 보이는데 사람이 하는 건 아닌지, 건설사가 하는지 등 다른 사안들까지 이것저것 물었다”고 말했다.
현장 담당자는 당시 한 곳뿐이던 지역 방호벽 업체가 건설사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쇠기둥 등 자재는 크레인을 활용해 이동·설치하고 있고 산지 정비가 이뤄진 후 철거돼 다른 현장에서 다시 쓰인다고 답했다. 인부는 자체 고용하거나 일당 인건비를 주고 모집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자재와 인부만 있으면 되는 사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미 친분이 두터웠던 건설업체들이 도로공사 지부 등에서 나온 발주를 수주해 용역을 준다고 담당자는 설명했다.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는 전무했지만 공사현장에 익숙하고 영업력만큼은 자신 있었던 박 대표는 지인과 함께 이 방호벽 사업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었다.
박 대표는 “먼저 지역 방호벽 업체에 말단으로 들어가 현장 밑바닥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며 “현장 소장들에게 관련 지식을 이것저것 묻는 한편 숙식을 같이하는 인부들에게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가며 현장 노하우를 파악해 전문 지식과 현장 간의 괴리를 좁혀나갔다”고 전했다.
그렇게 사업을 준비하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전문 업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틈새 시장’이었지만 가장 큰 장벽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값비싼 자재다.
2000년대 초중반 무렵,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던 터라 길이 100m의 공사 현장에 필요한 쇠기둥 가격만 8000만원 가량에 달했다.
2m마다 하나씩 세워지는 쇠기둥 사이에 들어갈 토판류 가격은 더 비쌌다. 게다가 토판류는 각 발주 현장마다 요구하는 소재가 다르다. 특히 두꺼운 쇠인 ‘잔넬’은 무게만 개당 30㎏라 원자재 값도 만만치 않았고 물론 차에 많은 양을 싣고 옮기기가 까다로웠고, 설치할 때도 별도로 크레인과 인부를 불러야 했다.
이미 여러 건의 계약을 따낸 박 대표는 영업력의 핵심인 ‘입담’을 살려 중고 자재 업체를 찾아가 외상으로 자재를 겨우 확보했다. 통상 3개월짜리 계약 기간 초 자재를 받고 외부 인부를 고용해 사업을 진행, 중간 정산이나 최종 정산으로 받은 돈으로 자재·인건비를 댔다. 동업하던 지인도 따로 사업하겠다며 독립해 혼자 전국 각지를 누볐다.
박 대표는 “진행해야 하는 공사만 여러 건 확보해놓고 자재·인건비가 없어 ‘돌려막기’를 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며 “거의 몇 년을 그렇게 일하며 자재 확보와 동시에 회사를 키웠다”고 회상했다.
현재 이 업체는 방호벽 자재로 H빔용 쇠기둥은 물론 토류판도 나무(목재), 강화 합성플라스틱, 쇠강판, 잔넬 등 여러 종류를 자체 마련한 상태다. 모두 투입하면 거의 8㎞ 길이의 도로를 한꺼번에 공사할 수 있다. 각종 토판류를 보유한 만큼 어느 발주 현장이든 문제 없다. ‘외상’까지 줬던 고마운 중고 자재 업체를 포함한 자재 업계와의 관계도 두터워 갖고 있지 않은 자재도 필요에 따라 제때 공급받을 수 있다.
특히 토류판 중에서는 ‘라이너 플레이트(liner plate)’가 눈길을 끈다. 공사 현장 길가에 간혹 보이는 물결 무늬의 은빛 철판이 바로 ‘라이너 플레이트’다. 라이너 플레이트는 철재라 목재나 콘크리트보다 압축·인장력이 우수하고 내구성이 좋으며 내식성도 강하다. 최장점은 가벼운 무게다. 취급·시공이 간편해 공사 기간이 짧고 타 자재보다 구조적으로 품질이 균일하며 외관도 흉하지 않다.
방화벽 사업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현장 인부도 확보했다. 특히 낙석·산사태 공사 등은 자칫하면 인부, 자재는 물론 도로 위를 달리는 일반인들도 ‘날벼락’을 맞는다. 그만큼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필수적인 셈이다.
박 대표는 타 업체와 달리 현장 인부들에게 최상급의 숙식 환경을 제공했다. 맨 처음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현장 안전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이를 통해 높은 숙련도를 가진 우수한 인부들을 고용, 현재 8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숙련된 이들은 회사가 고용한 인부들을 데리고 세 팀으로 쪼개져 전국을 누비며 시공·철거·관리 등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공사 현장은 여름이면 땡볕 아래에서 땀 훔쳐내며, 겨울에는 발이 얼 정도로 추위에 시달리며 일해야 한다”며 “그만큼 힘든 일을 하기 때문에 부실한 음식이 아닌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을 사드시고 숙박도 여관이 아니라 현지 최고급 모텔에서 편히 주무시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복지는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급여도 타사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다. 이는 회사 임직원뿐 아니라 일당을 주고 고용하는 숙련된 외주 인부들도 똑같이 적용된다. 월급이 700만~800만원 수준으로, 회사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인건비에 투자하는 셈이다.
회사 지출의 대부분이 인건비·자재비에 쓰여 타사는 인건비를 줄이려 애를 쓰지만 이처럼 ‘고급 처우’를 하면 그만큼 인력들도 ‘최선’으로 보답한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실제 타사는 100m 거리 도로에 방호벽을 설치하는 데 통상 4일이 걸리지만 이 회사 직원·인부들은 대낮은 물론 스스로 새벽부터 나와서 일해 3일이면 작업을 끝낼 수 있다.
이렇듯 자재는 물론 기술력도 신뢰성이 높아 지역에서 먼저 출발한 업체를 제치고 관급 공사들을 수주할 수 있었다. 지난달에는 충북도 증평의 지역 특화 ‘에듀팜’ 인근 도로도 시공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40억원 가량이다.
박 대표는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건설업체들이나 다른 전문 업체들도 타 지역에 여러 곳 생겨 경쟁사가 많아졌지만 이제는 업력도 15년이 넘었고 업계 신인도도 높아 문제 없다”며 “험한 일이지만 알짜배기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매번 도로 공사를 하면서 느꼈던 점을 물었다. 방호벽 사업과 전혀 무관한 보험업계 출신이기 때문에 제3자의 시각에서 그는 안전 등 다양한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산을 제대로 깎아 돌·토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탄탄히 다져놓지 않는 경우도 많아 그런 현장을 만나면 특히 신경을 써서 공사를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설치 시공 때는 엉망이라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정비 작업이 끝나고 자재를 철거하러 가면 말끔히 단정돼 있다”며 “한창 위험할 때 차들이 오가거나 공사가 진행되는 도로 위 안전을 책임지는 것 같아 그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전했다.
김주연 기자 sense@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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