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칼럼] ‘큰 바위 얼굴’같은 멘토 있습니까? 김종남 광주문화재단 이사
광남일보@gwangnam.co.kr |
2017년 09월 24일(일) 1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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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남 광주문화재단 이사 |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대학생들에게 자주 해주던 말이다. ‘날마다 무등산(無等山)을 보며, 무등(無等)을 닮은 인재가 돼라’는 바람을 담았다. ‘큰 바위 얼굴’ 같은 무등을 날마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무등산은 이름 유래도 많다. 무덤산, 무돌산, 선돌산(瑞石山), 무당이 많이 있대서 무당산, 또 ‘무등등(無等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등급을 매길 수 없이 높고 높은 부처 같은 산’이란 뜻이다. 무등산 둘레길 45km를 며칠간 걸으며 바라보면 그 이름 유래를 알만하다. 어느 쪽에서는 무덤같이, 또 어느 쪽에선 무돌같이, 또 다른 데선 선돌같이 보인다. ‘큰 바위 얼굴’은 심안에 비친 모습이다.
‘광주에 살면서 하루 몇 번씩 무등산을 보느냐?’고 묻는다면 우문일까. 무등산은 광주시내에서 보면 해 뜨는 동쪽이다. 새벽 무등산을 보라, 시가지에서 가까운 군왕봉, 장원봉, 팔각정, 향로봉, 조대 뒷산 깃대봉은 아직 캄캄한 어둠이다. 그 어두운 능선위로 무등산 상봉이 금빛 얼굴을 내민다. 태양 횃불을 든 무등산이 ‘빛고을’ 광주에 새벽빛을 뿌리는 모습이다.
무등산은 어디서 볼 때 가장 아름다울까. 큰 산은 멀리서 보아야 한다. 가까이에서는 작은 야산이 가려 구름 덮인 상봉만 보인다. 광주를 떠나 있다가 송정 쪽에서 광주 시내로 들어올 때 ‘아! 무등산이 저렇게 웅장한 산이었구나!’ 감탄하게 된다. 광주 시가지를 감싸 안은 무등산이 우람한 두 어깨와 널리 펼친 두 팔까지 뚜렷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 품 안에 있을 때는 그 웅장함을 볼 수 없다.
언론계 시절 나의 멘토이셨던 남봉(南鳳) 김남중(金南中;1917~1987)선생은 무등산을 유난히 좋아하셨다. 집무실 책상도 언제나 무등산을 바라보도록 놓았다.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회장 때, 금남로 1가 전일빌딩 회장실 책상을 놓았던 사람이 혼이 났다. 앉아서 무등산이 보이도록 책상을 놓지 않은 탓이었다. ‘항시 무등산을 바라보며 무등산 정기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매일 몇 차례씩 메카를 향해 무릎 꿇고 기도 올리는 회교도보다 더한 신심이다.
나에게 노장사상, 불교정신을 가르쳐 주셨던 인생멘토 아산(雅山) 조방원(趙邦元 ; 1926~2014)선생도 산을 좋아하셨다. 호(號)도 ‘아름다운 산(雅山)’, ‘벙어리 산(啞山)’이다. 곡성군 죽곡면 연화리 산속에 들어가 집짓고, 돌아가실 때까지 사셨다.
사람 멘토는 시한부이다. 원조 ‘멘토’도 트로이 전쟁에 나간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기까지 10년 동안만 오디세우스 아들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무등산은 광주 사는 모두에게 무한시간 멘토가 될 만하다. 멘토가 꼭 말을 하는 사람일 필요가 있나. 무등산은 1000 년 전 광주라는 도시가 이름을 얻어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 그 자리에 묵직이 가슴을 열고 있었다. 지금 세상 사람이 다 사라진 1000년 후에도 여전히 팔 벌리고 후손도 감싸줄 것이다. 슬플 때 감싸 안아주고, 즐거울 때 같이 춤춰주는 말없는 ‘천지자연 멘토’이다. 사람 멘토가 못하는 묵언 가르침이다. 이만한 스승, 친구, 지도자, 상담사가 있을까.
무등도서관을 나서며 바라보는 무등산은 상봉뿐이다. 군왕봉, 장원봉 녹색 능선이 떠받드는 사이로 쪽빛 무등산상봉이 머리를 내민다. 지친 눈을 한껏 풀어주는 청록색 이다. 머리에 쓴 하얀 구름은 노을빛을 받아 순홍색으로 빛난다. 답답하던 가슴속이 화안해진다. ‘큰 바위 얼굴 무등’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