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칼럼] 멘토링, 그 관계의 인문학 신원형(前전남대교수)
광남일보@gwangnam.co.kr |
2017년 11월 05일(일) 16:28 |
![]() |
먼저 사회적 차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만든다는 명제가 이에 해당된다.
개인이 처한 질병이나 어려움의 원인을 의학적,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적 원인에서 찾아야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다루는 분야를 사회역학(疫學)이라 부른다.
보통 일반인은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고 이러한 상처가 결국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소외계층이나 하급 노동자의 경우 겪게 되는 아픔은 보통사람보다 더 깊고 크다.
이처럼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고통은 사회가 제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아픔, 장애학교 건립을 위해 장애아 학부모들이 무릎 끓고 주민에게 빌었던 일 등 이 모든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이것이 사람 사는 사회인가’라는 반문이 절로 나온다.
이외에도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비정규직 문제,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장비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위험상황으로 내몰리는 소방관들 등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누군가는 그들 편에서 서야한다. 우리 모두는 다른 모두의 편에 설 때 그 해법이 찾아진다.
이 문제에 관해 김승섭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1960년대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로세토’ 마을을 소개하고 있다.(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 ‘로세토’ 마을은 같은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인 ‘방고’마을에 비해 심장병 사망률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 마을의 특별한 점은 한 신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문화였다. 이 마을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모든 주민이 애도하며 남겨진 자녀들을 내 자식처럼 함께 돌보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60년대를 기점으로 자본주의 이념이 마을에 들어오고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심장병 사망률은 결국 방고마을과 비슷해진다. 김 교수는 ‘로제토 이야기는 개인이 마주한 어려움을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의 힘, 타인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공동체에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고 지지해주는 멘토링이 뿌리내려 일상화 된다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다음은 개인적 차원에서 보기로 하자. 인간은 모두가 뒤틀린 목재이다. 쉽게 말하면 누구나 결함을 지닌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란 ‘결함이 있는 내면의 자아’와 ‘보다 성숙하기 위한 자아’가 끊임없이 투쟁하며 성장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혼자 힘으로는 자신을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다. 개인의 의지나 이성, 인격 등은 탐욕, 자기기만, 이기심을 지속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만큼 강하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외부로부터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좋은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개인이 살아가면서 치르는 내부적 투쟁에 달려있다. 이러한 투쟁은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는 타인과 연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의존으로 가득한 삶, 함께 하는 삶을 위한 지역공동체를 마련해야 한다. 이 경우 멘토링이 확실한 대안이 된다.
오늘날 어느 국가에서도 정부와 시장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 되었다. 우리 사회도 멘토링이 풀뿌리처럼 뿌리내리는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시민사회가 변모해 가기를 기대한다. 결국 우리 사회의 치유는 ‘관계의 인문학’에서 그 답을 찾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