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4차 산업혁명의 시대, 완행버스의 비유를 통해 본 인간중심의 가치 김희랑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
광남일보@gwangnam.co.kr |
2017년 11월 08일(수) 1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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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유난히 각종 미디어 매체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 꿈꿨던 상상들이 이제 곧 일상이 될 것이라 떠들어 댄다. 과거의 산업혁명과는 달리 선언적 개념으로 등장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우려, 그리고 그 대비를 위해 전 세계가 바쁘고 초조해 보인다. 대한민국과 같이 짧은 시간 동안 압축 성장을 겪은 나라들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급속한 현대화가 가져다 준 편리함은 불과 이삼십 년 전의 일을 까마득한 추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렸다. 어느 한 곳, 어느 한 동네에는 아직 예전 삶의 방식과 감성이 남아있을 법도 한데, 이제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 과거가 돼 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의 의식과 물질문명의 변화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지고, 그 속도 또한 빨라지고 있다. 어쩌면 인간은 그대로인데 세상만이 정신없이 바뀌고 있는지 모른다. 차가운 기계문명의 삭막함과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그립다. 인간적인 감성과 인간다움, 인간의 직관과 통찰의 가치가 절실한 때이다.
이처럼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인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농성동 하정웅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완행버스展’이다.
완행버스는 ‘빠르지 않은 속도로 운행하면서 승객이 원하는 곳마다 서는 버스’를 말한다. 시간표대로 운행하며 정해진 정류소에서 정차하는 시스템과 비교하면, 완행버스는 예측불가능하며 비효율적인 운행방식이다. 그러나 완행버스는 인간의 필요와 인간의 가치판단에 의해 운행되는 대단히 인간중심적인 버스이다.
이미 실생활에서 기계들이 인력을 대신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대부분의 분야에서 로봇이나 AI들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다. 혹자는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하더라도 인간의 의식이나 감성, 생각, 직관과 통찰 등의 영역은 침범하기 힘들다고 예측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점차 인간의 지능과 감성과 생각과 직관까지 흉내 내는 단계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상상은 늘 현실이 됐듯이 말이다.
인간이 상대해서 AI인지 사람인지 모를 정도의 단계, 인간인지 기계인지 혼동스러운 단계를 ‘기계의 인간화’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기계화’이다. 인간은 어떠한 행동과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 개개인마다 다양한 동기나 신념, 가치가 작용한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과 결정은 예측불가능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점차 황금만능주의 사고가 지배함에 따라 이윤동기 혹은 합리화라는 판단 기준에 의해 인간의 행동양식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예측가능하다’라고 함은 ‘계산 가능하다’를 뜻한다. 사람은 각자의 천성과 유전, 경험, 환경과 교육을 통해 고유한 인격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규격화되고 기계화돼 예측가능해진다면 어떨까. ‘인간의 기계화’야말로 미래에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예견되는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을 언급할 때 정보와 부의 집중화에 따른 부작용과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력의 대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등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계 스스로 이러한 불안을 현실화시킬 수는 없다. 기계는 철저하게 알고리즘에 의해 실행되는 폐쇄적인 논리체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마음과 정신, 즉 자유의지는 열려진 체계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사람마다 제 각각임은 물론이고, 같은 사람의 판단도 상황에 따라, 순간의 감정에 따라 규정지을 수 없는 수많은 다양한 작용에 의해 변할 수 있는 세계이다. 본능이나 이윤동기 혹은 합리성 등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신념과 가치의 실행으로서 자유의지는 때로는 손해와 희생이라는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미스테리한 힘, 그 예측불가능한 힘을 바르게 기르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스스로의 조절과 통제, 그리고 선택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한다. 전시 ‘완행버스’의 비유는 인과율(因果律, Causality)에 의한 정확한 계산과 효율적 결과의 산출이 아닌, 인간의 감성과 직관에 의한 판단과 선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