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칼럼] 한때 제자가 스승이 된다

김종남(언론인·광주문화재단 이사)

광남일보@gwangnam.co.k
2017년 11월 19일(일) 17:32
“상하이에도 삼다(三多)가 있습니다.”

푸동공항에서 상하이 시내 호텔로 가는 버스 안, 가이드가 ‘상하이 3다’를 맞춰보라고 했다. 버스는 길을 가득 메운 차들 때문에 거북이걸음 중이다. 첫 다는 바로 알겠다. ‘차(車)’, 두 번째 다는 ‘빌딩’. 세 번 째 다가 핵심이었다. ‘사람’. ‘사람’이 많으니 ‘빌딩’도 많고 ‘차’도 많아 질 수밖에.

한 시간 걸린다던 호텔까지 1시간 반 이상 걸렸다. 상하이에서 길 막히는 일은 다반사, 짜증내는 사람만 손해다. 27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서울, 경기도, 인천을 합친 만큼 한 땅(6340만 평방km)에 몰려있다. 거기에다가 매년 1000만 방문객이 몰린다. 상하이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사람 보려고!”. 우문현답 같다.

우리 일행은 사람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려고 갔다. 결국, ‘사람(觀客) 보러’ 간 셈이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아, 제12회 한민족문화제에 초청받은 광주 문화재단 공연단 일행이다. 얼쑤, 히어로 댄스, 임민영무용단, 아이리아, 강혜경 연출 등 공연단은 첫날 홍성(紅星)광장에서, 둘째 날은 상하이 한국문화원에서 소고춤, 사물놀이 ‘운우풍뢰(雲雨風雷)’, 퓨전국악 ‘RePlay’, 라틴댄스 ‘신명’, ‘브랜드 뉴 아리랑’을 보여주었다.

둘째 날 상하이 한국문화원(원장 서동욱) 공연은 완전히 중국인을 위한 공연이다. ‘光州激情 点亮上海(광주의 열정으로 상하이를 밝히다)’, 팸플릿이 온통 한문이다. 한글은 표지에 몇 자뿐이다. 공연 진행도 한국말은 없다. 관객이 많아 자리가 부족했다. 춤, 율동, 가락, 북, 장구, 징, 대금, 피리, 해금, 소고가 어우러져 신명을 일으킨다. 전통한국문화를 현대에 접목시킨 빠른 템포 공연에 중국관객은 흥겨워했다.

기립박수는 중국문화가 아니라는데 기립박수를 하고 무대에 올라 같이 사진을 찍었다. 한류문화 ‘떼창’이 연상된다. 무대와 관중이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는,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한류문화 아닌가. 현지TV방송에서 인터뷰를 왔다. “한류의 뿌리는 남도 전통문화이다. 빛고을 광주(光州)의 열정이 상하이를 밝게 불붙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해주었다.

문화는 밀물 썰물처럼 오고 간다. 중국으로부터 한자문화를 전하여 받았던(傳受) 한국이 이젠 공연문화를 중국에 전하여 줄(傳授)때가 왔나 보다. 한때 제자가 스승이 되고 한때 스승이 제자가 된다. 멘토도 마찬가지이다. 한때 멘티가 멘토가 되고, 멘토가 멘티가 된다. 나이 많고 적음이 기준이 될 수 없다. 경험 많고 적음도 기준이 아니다.

이번 상하이 행에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쓰려고 유심칩을 사서 바꿔 끼웠다. 처음 시도해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일행 중 젊은이 한 분이 열심히 조정해주었다. 모바일 문화에는 젊은이가 스승이다.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데 옛 지혜와 경험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 쉽다. 재개발로 다 바뀌어버린 거리에서 주소를 찾는데 수십 년 그곳에 살았다는 ‘노마(老馬)의 지혜’가 무슨 소용일까.

차 없는 거리, 상하이 번화가 남경로(南京路)는 금남로만큼 넓은 길이다. 그 넓은 길이 사람물결로 꽉 찬다. 더욱이 주말 인파는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물결에 휩쓸려 본 경험이 있나. 마치 야구시합이 막 끝나고 몰려나오는 인파에 휩쓸리는 기분이다. 처음엔 대규모 관광단이 풀려나온 줄 알았다. 축제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30분 걷는 동안 인파는 한 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 사람물결은 어디에 와서 어디로 가는 인파일까. 인파가 내뿜는 기운으로 도시 전체가 들떠 보인다. ‘사람 보러’ 상하이에 오는 게 아니라 ‘사람 기운 받으러’ 상하이에 와야 할 것 같다. “세 사람이 길을 감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三人行 必有我師)” 30분에 아마 삼만 사람은 만났을 거다. 삼만 스승을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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