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담론 ‘예술로 포용’ 새로운 미래가치 창출 ■창설 30주년 광주비엔날레와 100년의 비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
2024년 09월 29일(일) 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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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광주비엔날레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장 전경(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리고 있는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
도시이름을 따라 정신이 붙는 도시는 광주가 거의 유일하다. 익히 들어본 바 있는 ‘광주정신’이 그것이다. 광주정신의 근간은 무엇일까. 아마 광주정신은 현대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된 5·18민중항쟁이 근간이다. 위로 거슬러올라가면 조선시대 내내 전라도는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맞을 때마다 호남인들이 똘똘 뭉쳐 국난을 타개했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 결정적 근거로 이순신 장군의 편지에서 찾는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국가군저개고호남 약무호남 시무국가’라고 밝혔다. ‘국가 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이다. 호남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왕정 등 역사 대대로 반골기질이 강하게 발현됐고, 군부독재 정권 시절에는 가장 앞장서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5·18민중항쟁은 광주의 아픔이지만 광주의 자랑스런 역사가 됐다. 이러다보니 국내 최초의 비엔날레가 광주에서 태동했기에 이론적 골격을 5·18에서 추출한 것이다. 민주·평화·인권과 대동세상의 단초가 된 5·18이 정치나 사회 등 분야에서만의 논리가 아니라 문화예술 분야의 담론이 된 것은 당연했다.
가령 요코하마트리엔날레의 경우 국제정세가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전시를 거듭함으로써, 세계와 일본,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고찰하고, 미술의 사회적인 존재의의를 보다 다각적인 시점에서 질문해 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81년 부산지역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의지로 태동한 부산청년비엔날레를 전신으로 하고 있는 부산비엔날레를 망라해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국내비엔날레 역시 광의적으로 예술과 예술로 인한 새로운 시대를 향한 고민과 열망을 담아내려는데 치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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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 당시 어머니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담았던 양은 함지박.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 기념 ‘마당-우리가 되는 곳’이라는 주제로 마련된 특별전이 오는 11월 24일까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일 지아르디노 비안코 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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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원년 대회 당시 쿠바의 보트 난민의 삶을 상징화한 출품작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 관람 인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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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중항쟁과 떼래야 뗄 수 없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 1995년을 필두로 총 4차례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관람한 것으로 기록된다. 제1회 출품작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고인돌’(Dolmen, 1995)을 둘러보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
물론 원년 대회가 열린 1995년 당시 오월정신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과 접근이 작동되면서 미술계 분열 조짐이 표출된 바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오로지 국제성만을 내세우는데 반발해 지역성의 가치를 강조하는데 치중했던 광주민족예술총연합(광주민예총) 산하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광미공) 회원들을 주축으로 ‘광주통일미술제’가 펼쳐졌다. 당시 광주통일미술제추진위원회는 ‘왜 통일미술제를 하는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의 미술제는 또 하나의 전시형식이 아닌, 비엔날레의 파행성을 고발하면서 민족미술의 진로를 역동적으로 개척하는 새 출발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각오이자 다짐”이라고 했다. 이런 반발 기류가 실제 있었으며, 비엔날레와 통일미술제로 분열될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였으나 결과론적으로 163만명이 다녀가는 등 대성공으로 귀결됐다. 이때 광주비엔날레는 이미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라 이론적 근간을 확고하게 정립한 계기가 됐다.
광주보다 늦게 시작된 요코하마트레엔날레가 그랬듯 광주비엔날레 역시 지역의 대표적 정신사적 담론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태생적 비밀이 있다. 5·18민중항쟁과 공동체 정신으로 파생된 광주정신을 광주비엔날레 태동의 사상적 밑바탕으로 활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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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20주년인 ‘2014광주비엔날레’ 개막식 장면. |
그러면서 세계 각 대륙의 예술지형을 수용하는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시대 국제 미술의 관문으로 작동하기를 희망했고, 서구 미술의 단순 수입을 벗어나 남미, 아프리카, 중동을 넘나드는 전세계 미술의 흐름과 패턴 및 문화적 다양성을 축적하는데 주력했다. 광주비엔날레가 사상적 취약성없이 전통을 쌓아갈 수 있는 배경이 됐다.
그러면서 기후 위기나 인종, 젠더, 민주주의, 이주와 정주, 전쟁, 소수자, 학살, 탄압, 고문 등을 전시주제로 다루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광주비엔날레의 태생부터 함께 한 공동체 담론을 빠뜨릴 수 없다. 광주라는 도시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아시아, 나아가 지구라는 공동체까지 그 크기와 형태에서 다종·다양함을 추구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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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함지박 |
5·18민중항쟁의 고장이어서 그런지 보수세력에 의한 왜곡과 폄훼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프레스오픈 당시에도 한 언론인이 이 지역은 70% 이상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곳이라고 전제를 한뒤 주제로 내세운 판소리가 지극히 지역적 편파성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는 여전히 5·18민중항쟁으로 대표되는 광주정신의 왜곡과 폄훼가 언제나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답변에 나선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의 지극히 정상적인 답변으로 인해 더이상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었다. 이 질문을 듣던 상당수 참여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너무나도 정치적 발언이었고 자칫 호남 비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때문이다. 박 대표는 “광주정신은 민주와 인권, 평화 그리고 포용과 화해로 판소리는 공공영역의 소리이자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 대해 마음놓고 노래를 부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판소리는 전통장르이지만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에 의해 예술로 전환된 것이 이번 전시”라고 말하면서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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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국내외 지자 초청 설명회 모습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