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원전 사용후핵연료 대책은?] "원전 정책, 주민과 함께 풀어야"

<3>전문가 제언-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형식적 공론화 아닌 지역주민 의견 수렴 필요성 커져
핵 산업은 사양산업…정부도 변해가는 흐름 직시해야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영광=정규팔 기자 ykjgp98@gwangnam.co.kr
2024년 10월 16일(수) 18:39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전 정책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핵 발전에 대한 찬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현 정부가 추진하는 ‘원전 최강국 정책’은 단지 핵 발전에 대한 옹호에 그치지 않고 있다.

현 정부의 원전 정책은 전 정부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뜻하며, 정치 쟁점으로서 의미가 강하다.

문재인 정부 말기 광범위하게 퍼진 태양광 가짜뉴스인 ‘중금속 태양광, 핵폐기물보다 위험한 태양광’, ‘기-승-전-탈원전 반대’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강원도 산불이나 한전 적자와 다르게 최소한의 논리적 근거조차 없이 ‘탈원전 반대’를 주장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지 3년차를 맞고 있는 지금, 에너지 정책은 혼란에 빠져 있다.

송전선로 문제로 이미 완공된 동해안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 중지 상태고, 재생에너지 확대가 시급한 상황에서 호남과 제주에선 송전망 신규 접속이 중단되고 있다.

또 한전의 적자는 200조원을 넘긴 데다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은 침체 상태에 빠져 있는 등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과 관련해 공론화, 재공론화 과정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그 원인은.

△지금까지 공론화가 실패했음에도 정부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운영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공론화위원회는 위원회 출범식 당일 시민단체 추천 위원 2명이 사퇴하는 일을 포함해 위원회 활동기간 동안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최종 보고서에 위원 15명 중 6명이 서명하지 않는 상황도 벌어졌다.

또 문재인 정부 공론화위원회(재검토위원회)는 정부가 추천한 위원장이 ‘공론화가 실패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이후 그 내용을 담아 책까지 출간할 정도였다.

특히 공론화 과정에서 가장 주요한 이해당사자인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와 핵 산업계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 없으면 전력 대란이 일어난다’며 법률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엄포를 놓고 있다.

특별법이 없어도 경주의 맥스터는 잘 증설했고, 영광의 사용후핵연료 소내 저장시설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도 설계 등 건설 절차에 돌입하는 등 어불성설이다.

정말로 정부가 공론화할 마음이 있다면, 기존 정부의 ‘형식적인 공론화 절차’에 대해 지역주민과 국민에게 사과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고준위 특별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고준위 R&D 사업이 연관돼 있다고 본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소내 저장시설 등은 현행 법률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동안 정부와 한수원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내 저장시설을 계속 증축했다.

하지만 녹색분류체계는 다르다.

현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기후위기 대안이라는 미명 아래 핵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 중인 사업이 ‘녹색’인지 여부를 구별하는 기준이 바로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다.

유럽을 비롯해 우리나라도 핵 발전이 녹색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즉 고준위 특별법이 없으면 핵 발전은 녹색사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녹색사업으로 인정을 받아야 녹색 채권도 발행하고 이후 관련 자금, 예산 확보에 유리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고준위 특별법이 필수적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고준위 R&D 사업이다.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은 8조6000억원 규모로 오는 2039년까지 약 20조원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당장 고준위 처분장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연구개발이 이어져야 해 비용 중 상당수가 연구개발비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을 일부 활용하고 있지만, 추후 시설 건립부지 조사와 처분·이송 용기 개발 등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와 관리기관 등이 정해져야 한다.

이 내용은 임시저장고 포화에 따른 핵 발전소 가동 중단 등과 무관한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등은 ‘전력 대란’ 같은 말 등으로 지역주민들을 겁주고 있는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국회에서 발의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난 21대 국회에서 고준위 특별법에 대해 11차례 법안 소위 논의가 있었다.

외부적으로는 찬반 격론이 있었던 것처럼 보도됐지만, 사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여야가 합의를 이룬 상태였다.

한 예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일반 행정위원회로 설치하고 추후에 중앙행정기관으로 변경 여부를 검토한다거나, 방폐물 관리 사업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수행하는 등이다.

단지 이견이 드러났던 부분은 부지 내 저장시설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을 설계수명 동안으로 한정해 지을 것인지, 아니면 수명연장을 고려해 운영 허가 기간으로 할 것인지였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 안(김석기, 이인선, 김성원, 정동만 의원)은 저장용량을 ‘허가 기간’으로 하는 것이었고,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 안은 ‘설계수명’으로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우려하는 점은 처분장 부지 선정이 지연되거나 부지 선정 과정에서 기존 핵발전소 지역이 그대로 처분장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즉 명목상 ‘소내 임시 저장’이지만, 그것이 ‘사실상 핵폐기장’으로 고착되는 상황을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어느 법에도 이를 금지하거나 고려한 법안이 없다. 문제는 계속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국회 논의는 이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22대 국회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법안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지는 의문이다.



-현 정부 소관 핵폐기물 처리 등을 위한 관련 기구가 없다. 어떤 부서가 담당하고 있는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고준위 방폐물 재검토위원회가 해산된 뒤 지금까지 정부와 지역주민, 시민단체들의 소통 창구가 없다.

지난 2018년 재검토위원회 구성을 위해 ‘재검토 준비단’을 구성한 적이 있었지만, 마지막 논의가 파행된 뒤 고준위 문제를 논의할 기구조차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는 고준위 특별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22대 국회가 법을 제정하더라도 실행 과정에서 새로운 갈등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에 대한 대안은.

△문재인 정부에서 노후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중단하는 등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지금 논란이 되는 소내 저장용량이 결정된 상태였다.

이를 바탕으로 재검토위원회에 정부,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 핵 산업계가 함께 지속적으로 소통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정부는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공론화위원회는 결국 파행으로 끝난다’며 중립적인 전문가들로만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결과는 더 큰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공론화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국민의 의견을 들으려면 그 의견을 따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정부가 답을 정해 놓고 공론화를 추진하는 시도를 반복한다면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끝없는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끝으로 국내 원전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은.

△정부는 끊임없이 신규 핵발전소를 지으려 하지만 부지를 찾는 게 쉽지 않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 신규로 핵발전소를 지으려는 노력은 해왔지만 지난 20년간 해당 나라에서 운영 중인 핵발전소 숫자는 모두 줄었다.

장시간 소요되는 건설 기간,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 등 더 저렴한 발전소의 등장, 핵폐기물과 해체·안전 규제 비용 증가, 지역주민의 반대 등 다양한 이유로 핵발전소 숫자가 줄었다.

선진국에서 핵 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는 것은 정부 의지보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이제 우리도 이런 현실을 인정해야 할 시기다. 대책 없이 핵 폐기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앞으로 예상되거나 이미 만들어진 핵 폐기물을 처분할 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먼저 도출해야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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