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그리고 광주 장승기 정치부 부국장 광남일보 기자 @gwangnam.co.kr |
2024년 11월 03일(일) 18:47 |
지난달 28일 KIA 타이거즈가 7년 만에 통합 우승을 일구며 통산 12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라선 순간, 한명재 캐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한 캐스터의 우승콜은 지금까지도 긴 여운을 남기며 감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KIA 타이거즈는 이날 광주에서 열린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5차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7-5로 승리해 7년 만에 통합 우승과 함께 통산 12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라섰다. KIA의 통합 우승은 단일리그 기준 7번째이며, 한국시리즈 우승은 역대 최다인 12번째다. KIA는 2017년 이후 7년 만에 왕좌에 복귀했다. 31년 만에 성사된 삼성과의 ‘영호남 라이벌’ 클래식 매치에서도 완승했고, 최종 무대에 서면 지지 않는 ‘한국시리즈 불패 신화’도 이어갔다.
KIA 타이거즈가 우승을 거머쥔 순간, 광주는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충장로와 상무지구, 전대후문 등 지역 곳곳의 음식점과 호프집 등에선 야구경기를 보기 위해 찾은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타이거즈가 역전의 ‘반전 드라마’를 썼을 때는 환호성으로 온 동네가 들썩였다. 9회 삼진으로 경기가 끝나자, 어린이부터 학생, 직장인, 주부, 어르신까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광주 시민들은 하나의 스포츠인 야구 경기에 왜 이렇게 집착(?)하고 있는 걸까? 광주에서의 ‘프로야구’는 남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야구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82년에 출범한 프로야구는 1980년 전두환 정부가 군사 독재로 인한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 시행된 우민화 정책과 무관치 않다. 프로야구 출범의 배경에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5·18 무력 진압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세력은 독재정권 연장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억누르고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3S’(screen·sex·sports) 정책을 이용했다.
프로야구 또한 그 중 하나였다. 스포츠 중에서는 야구가 정부의 지원 한 푼 없이도 기업을 통해 쉽게 창단할 수 있어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5·18을 숨기기 위해 열린 1980년대 프로야구의 오랜 강자는 광주를 연고로 하는 호랑이였다. 호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공공연하던 시절, 호남 사람들에게 해태 타이거즈는 절대 지면 안 되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호남 사람들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야구장을 찾아 ‘목포의 눈물’과 ‘남행열차’를 외치며 울분과 한을 풀고 위로까지 받았다. 역설적으로 서러운 세월을 숨죽이고 살았던 호남 사람들에게 프로야구는 해방구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40여 년의 세월이 흘러 ‘해태’에서 ‘KIA’로 바뀐 현재. 프로야구는 ‘목포의 눈물’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의 뜨거운 야구 열기로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20대의 여성들이 유니폼을 입고 머리띠를 쓰고 경기장을 찾으면서 역대급 흥행 돌풍에 최다 관중을 경신하고 있다.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한 김도영 선수 등의 유니폼은 없어서 못 팔정도다. 여기에 KIA 선수들이 삼진을 잡을 때마다 나오는 ‘삐끼삐끼 춤’은 외신에도 소개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KIA의 이번 한국시리즈 우승은 광주시민은 물론이고 침체일로에 있는 지역 경제에도 모처럼 ‘단비’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KIA의 역대급 흥행에 지역민은 물론 전국에서 광주를 찾은 야구팬들이 숙박과 외식업체를 이용하면서 소비도 크게 늘었다. 실제 광주를 찾은 ‘원정팬’은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BC카드가 발표한 자사 고객 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올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방문한 원정 야구팬은 전년 동기 대비 85.1% 증가했고, 이들이 인근 가맹점에서 소비한 금액도 113.7%나 늘었다. 광주공공배달앱을 통한 주문 건수와 매출액도 급증했고, 유통업계는 물론 지역 숙박업계도 한국시리즈 종료까지 ‘만실’의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한국시리즈 등 야구가 열리는 날에는 광주 골목상권도 들썩였다. 상무지구 치킨 프랜차이즈 한 전문점에는 올 한해 광주 경기에 KIA를 응원하러 온 손님들로 넘쳐났고 전화 주문은 받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전한다.
이처럼 KIA 타이거즈는 ‘광주의 힘’이다. 최근 광주 출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은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시민들에게 다시 한번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광주와 함께 울고 웃은 타이거즈의 43년 역사에는 광주시민의 일상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광주의 밤하늘에 우승 축포가 쏘아지던 그 순간, 어쩌면 광주시민들은 벌써 내년 우승을 간절히 바랬는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우리나라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나 국제 정세 등을 볼 때 어느 한 곳이라도 기대할 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기쁨과 행복을 찾을 곳은 오직 KIA 타이거즈의 우승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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