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도전하는 작가’…이성과 감성의 화폭 추구

[남도예술인] 한국화가 정명숙
춘·하·추·동에 모내기 합쳐 ‘오계절’ 시즌 설정 구현
금·은박·자개 섞어 재료로 활용…비구상 화면 구축
내년 나주 폐교에 ‘예술광촌 507’ 개관 오픈전 계획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4년 12월 05일(목) 18:12
‘여린 초록 사이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는 늘 분주하다. 흔히 한국화가들 중 호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더러는 양반문화의 잔재라며 사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예술가의 멋쯤으로 여겨 호를 사용하는 이들 역시 많다. 연배가 위로 올라갈수록 호를 많이 구사하지만 아래로 내려올수록 호를 쓰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 작가 역시 젊은 작가로 꼽을 수 있다. 그저 호가 멋있어서 붙였다기보다는 워낙 분주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을 두고 대학 동기가 ‘너는 늘 분주하니까 나눌 분(分), 뿌리 주(株) 어때’ 한 것이 시초였다. 그가 닉네임으로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주변에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러 사용하는 모양이다.

필자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에 생경했지만 예술가이기 전에 생활인으로 그가 얼마나 분주하게 살아왔는지를 알면 ‘분주’라는 호가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생활인으로는 억척스럽게 일상과 생계를 꾸려오면서 창작의 삶 역시 게을리하지 않고 열정을 가지고 꾸려 왔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한국화가 정명숙씨. 작가는 조대 인근에서 첫 작업실을 얻어 창작생활을 한 뒤 소태동과 운암동을 거쳐 5번째 작업실인 화순 능주 인량동길에 안착해 6년 전부터 머물며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카페 운영 등 10여년 동안 생활현장에 맹렬하게 종사했고 현재 캠핑장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일들을 해오면서 예술적 끼뿐 아니라 사업적 수완까지 갖춘 듯 보였다. 경력을 쌓은 학교로 돌아가 교사로 잠시 재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업적 수완보다는 창작인의 삶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일상에서 털어낼 부분들을 모두 털어내고 인량동길로 돌아와 수완지구 자택과 이곳을 오가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해 왔다. 그가 화순에 자리잡은 것은 부모님 고향이 화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실 위치를 부모님 댁 근처로 물색한 것이다.

작업실은 마을의 제일 끝자락에 위치해 조용한데다 뒤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에 대밭까지 어우러져 욕심이 날만한 공간이었다. 더욱이 지금은 논으로 바뀌었지만 지난해까지 작업실 앞에는 복숭아밭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주된 색조인 파란색을 기조로 하며, 자개와 금·은박, 아크릴 등 혼합재료를 활용해 작업을 한다. 그는 오랜 작업 뒤 깨달은 내용으로 작가에게 결국 색하고 재료만 남는 것 같다고 들려줬다. 자개는 주로 동그라미 안에 일일이 붙여넣어야 해서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된다는 설명이다.

‘대나무 잎은 색이 되어 쌓여간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개인전(2024.2.16∼25) 모습.
이처럼 최근의 작업 기법을 안착해가는 동시에 환경적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전을 위해 편안해진 일상을 뒤로 하고 나주로 이주를 앞두고 있다. 과감하게 변화를 택한 것이다. 1946년 개교해 2007년까지 운영되다 폐교된 나주 남평초 광촌분교를 10년간 운영하기로 계약을 맺고 이곳을 ‘예술광촌507’로 탈바꿈시키는 중이다. ‘예술광촌507’은 분교가 광촌리 507번지인데서 유래됐다. 작가는 기존 시설을 활용해 갤러리와 카페, 체험학습실, 세미나실, 사무실 공간 등을 구축해 예술공간으로 꾸며가고 있다.

운동장 또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복안이다. ‘예술광촌507’을 위해 그가 직접 설계하다시피하고 지었다 해도 무방할 인량동길 소재 작업실까지 최근 부동산에 내놓았을 정도로 정성을 들이고 있다. ‘예술광촌507’은 그에게 도전이자 진심으로 느껴졌다. ‘예술광촌507’은 2025년 8월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픈전에는 남평 인근을 소재로 한 어반스케치 작품을 모아 16명과 함께 전시를 열기로 하고 한참 작업 중이다.

아울러 내년 7월에는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내년 1월 9일 학교 방학 이후 열심히 작업을 하며 준비해나갈 복안이다. 개인전이야말로 또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는 다시 요즘 작업에 대해 언급했다. 계절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순으로 작업실을 옮겨온 뒤 계절이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밝힌 그는 계절이라고 하는 것이 자신의 생활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해졌다는 귀띔이다. 화단에서 그의 작업은 오계절 이야기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춘·하·추·동이 아니라 봄, 모내기,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계절을 해석하고 있어서다. 모내기는 그에게 단순하게 농사행위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듯했다.

메인 오브제로 화선지를 쓰지 않고 캔버스를 쓰고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 거기에 금박과 은박, 자개를 섞어 재료로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작업 초반기에 너무 힘들게 되면 나중이 힘들어 제게 맞는 재료를 찾은 것이 금박과 은박, 자개, 그리고 캔버스를 선택해 계절을 표현하게 됐죠. 재료비가 만만치 않지만 작품을 판매, 마련해 쓰고 있습니다. 100호 크기의 작품이 공신력있는 기관에 괜찮은 가격에 판매된 것과는 무관하게, 기쁘지 않은 이면에는 작업에 대한 공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들이 모두 작업을 열심히 하지만 자신은 더 욕심을 내는 편이라는 그는 작업도 잘 하고, 자식도 잘 키우고, 가정도 잘 꾸리고 싶어한다. 큰일없이 보듬어나가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한국화가 정명숙
한국화가 정명숙씨는 “계획적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인 만큼 열심히 하는 작가가 되겠다. 예술가더라도 감성과 이성이 화폭에서 병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감성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고 밝혔다.
처음 그는 어떻게 화가의 꿈을 가지게 됐을까가 궁금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입학했고 미술교육과를 거쳐 막막하던 무렵 교직에 발을 딛은 후 6년 정도 생활을 했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정리했던 일인데 그는 지금 학교에서 담임까지 맡고 있다.

생활적으로는 맹렬하게 임해 온듯한 그도 큐브상자나 나무(목재) 등으로 입체작업에까지 보폭을 넓혔지만 설치 작업이 쉽지 않아 결국 평면으로 돌아오게 된다.

“대학원 박사학위 과정 후 그림이 너무 이쁘지 않아 늘 덜 완성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동그라미로 잘라서 화선지를 덮었는데 눈에 너무 편안하고 조형적 그림이 됐습니다. 그후 점·선·면을 기반으로 한 비구상 그림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죠. 박사 과정 때는 구상을 그렸었죠. 그래도 박사 청구전은 입체로 했어요. 능주로 이사온 뒤 드디어 조형감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제게는 무릉도원인 셈이죠. 캔버스에 동그라미를 하는데 들녘에서 농부들이 모내기를 하는 것을 보고서 마치 땅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보여서 농부의 모내기에서 받은 인상의 그림을 저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는 고 양계남 전 조선대 교수님과 함께 했던 자연을 그리는 등 그를 회고하면서 올 2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의 전시에서 그를 추모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왕 모내기 시즌을 넣어 오계절을 표현하고 있는 만큼 또 다른 느낌으로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계절을 안다는 것이 철이 든다는 것인데 이제 알게 됐다는 반응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와 어떤 작가로 평가받고 싶은가를 묻자 그는 ‘늘 도전하는 작가’라고 답하며 인터뷰를 갈무리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들을 대작으로 해보고 싶네요. 조금이라도 더 젊었을 때 대작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흥적인 작가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작업하는 스타일인 만큼 열심히 하는 작가나 계속 무언가를 위해 움직이는 작가가 될 겁니다. 예술가더라도 감성과 이성이 화폭에서 병행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감성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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