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24 ‘군주민수’

양동민 정치부장

양동민 기자 yang00@gwangnam.co.kr
2024년 12월 16일(월) 09:44
송년회, 자선냄비, 거리의 대형 성탄절 트리, 노벨문학상 수상 등 올 연말은 여느 해와 익숙한 듯 특별한 풍경이 기대됐다.

이런 기대는 세밑 초 한순간에 무너졌다.

지난 3일 밤 10시25분께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때문이다. 언론매체를 통해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초유의 발표였다.

198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광주시민은 ‘과거의 참혹한 기억’을 떠올렸고, 영화로만 보던 계엄령을 처음 맞았던 젊은 층은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됐다.

여야 의원들은 곧장 국회로 집결했다. 계엄군의 국회 진입에도 우원식 국회의장은 4일 0시 48분 본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상정했고, 재석 190명에 찬성 190명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6시간만에 계엄은 종료됐다.

곧장 탄핵 정국이 시작됐다.

7일 이뤄진 표결에서는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표결에 집단으로 불참하면서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만 참석해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고, 탄핵안은 자동 폐기됐다.

계엄 해제 후 이어진 두 차례의 대국민담화는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인식을 여실히 보여줬다.

민심은 들끓고, 야당의 공세는 더욱 세졌다.

14일 오후 4시 윤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재석 의원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탄핵안이 통과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7시 24분 권한이 중지됐다. 탄핵소추 의결서 등본이 대통령실에 전달된 때문이다. 비상계엄 선포 후 권한 정지까지 11일만이다. 시간으로 치면 약 261시간만이다. 직무정지된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으로 넘겨졌다.

이는 촛불 시민의 함성에 국회가 응답한 결과다.

‘2024년 12월14일’은 주권자인 시민의 힘으로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하고 새로운 시작의 문을 열어젖힌 국민 승리의 날로 기록되게 됐다.

우리 현대사는 늘 시민의 힘으로 쓰여졌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막아낸 것도, 2016~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와 헌재의 파면 결정을 이끌어냈다. 국회 앞과 전국 거리를 또다시 가득 채운 시민들은 윤 대통령 탄핵의 둑을 무너뜨렸다.

‘군주민수’라는 사자성어 처럼 역사적으로 민심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불편하게 하는 정치는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이 말은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6년에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변함없는 민심과 권력의 괴리를 여전하다.

지난 9일 공개된 2024년 사자성어는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라는 뜻을 지닌 ‘도량발호’였다. 교수들은 윤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 정부의 권한 남용, 검찰독재 등을 추천 사유로 꼽았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인 지난 2일까지의 조사결과였는데도 작금의 정국에 대한 교수 사회의 강도 높은 비판 의식을 담았다.

군주민수가 주권자의 힘과 민주주의의 본질을 강조했다면, 도량발호는 이에 반하는 권력의 남용을 경고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뿐 만 아니라 민심은 무도한 권력에 대한 경고음을 꾸준히 울렸으나 권력에 취한 대통령은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에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 이듬해는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의 ‘견리망의’가 선택됐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탄핵안 가결로 정국 불확실성의 가장 큰 요인은 제거됐다. 이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최장 180일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남았다. 국가적 혼란과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헌재는 집중심리로 조속한 결론을 내야 한다. 차분히 미래를 그려가는 시점이 된 탓이다.
양동민 기자 yang00@gwangnam.co.kr         양동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광남일보 홈페이지(gwang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gwangnam.co.kr/article.php?aid=1734309886495189000
프린트 시간 : 2025년 03월 10일 17:3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