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균수 칼럼/ 계엄

주필

여균수 기자 dangsannamu1@gwangnam.co.kr
2024년 12월 29일(일) 17:49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계엄을 선포한 뒤 지금까지 온 나라가 혼란을 겪고 있다. 대통령의 난데없는 심야 계엄선포를 TV로 지켜보던 시민들은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지금 시대에 무슨 계엄이냐”며 비현실적이 상황을 따져 물었다.

경찰이 국회 밖을 통제하고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시민들의 의구심은 공포로 바뀌었다.

12·3 계엄 사태는 45년 전 계엄의 실체를 직접 경험한 광주시민들에게 더 큰 공포를 안겨줬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부터 광주 트라우마 센터에는 정서불안, 불면증 등을 호소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비록 계엄이 국회 계엄해제안 결의로 2시간30분만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엄 선포 후 10일 동안 광주 트라우마센터에는 방문 상담 84건, 전화 상담 42건이 접수될 정도로 파장이 켰다.

계엄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계엄(戒嚴, Martial law)은 헌법 상 전시, 사변 등 국가 비상 사태에 대통령 등 국가원수 또는 행정수반이 군대를 민간 및 사법에 투입하는 조치이다. 계엄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직역하면 ‘엄(嚴)히 경계(戒)한다’는 뜻으로, 실제 의미와 잘 닿지 않을 수 있으나, 영어 표현인 ‘martial law’를 접하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martial’은 ‘싸움의, 전쟁의’라는 의미의 형용사로, 로마 신화의 군대 신인 ‘마르스(Mars)’가 그 어원이다. 즉 ‘martial law’란 ‘군대식 통치 체계’라는 뜻으로 군이 경찰권, 검찰권, 사법권 등의 전권을 장악할 뿐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군법을 적용하겠다는 의미이다.

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인해 질서가 교란된 지역에 선포하는 경비계엄과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한 사태에서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해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에 선포하는 비상계엄 등 둘로 나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경비계엄 6회와 비상계엄 10회 등 총 16번의 계엄령 선포 사례가 있었다. 다만 경비계엄은 비상계엄 선포와 연계적으로 선포된 적은 있으나, 단독 선포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여순사건이나 한국전쟁 등과 같이 전시상황이거나 대통령이 암살된 10·26사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계엄이 발동된 상황은 실질적인 국가위기라기 보다 군부 독재세력의 권력 찬탈이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발동된 것이었다. 계엄이 독재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용도로 악용돼온 것이다. 그런 만큼 시민들에게 계엄은 공포 그 자체이다.

계엄은 국가원수에 의한 적극적인 물리력 동원이므로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서 그렇듯 언제든지 권력자의 뜻에 따라 남용될 가능성이 있는 제도이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 역시 권력남용의 대표적 사례이다.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여전히 독재정권이 국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민주화운동이나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운동이 일어나면 그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 계엄령을 발동하는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계엄령이 발령되는 정도와 기간은 한 국가의 안정성 및 민주주의의 척도를 알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되기도 한다.

흔히 계엄하면 군인들이 나라를 점거하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애초에 계엄령의 실시 주체는 대통령이지 군인이 아니다. 즉 행정부가 입법부, 언론, 시민사회 등을 통제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군인이 총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군사쿠데타와는 다르다. 다만 계엄이 장기화될 경우 정부요인에 군 출신으로 채워지게 될 가능성이 많기는 하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을 국회가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계엄이 실행되면 원칙과는 다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법권을 장악한 계엄사령부가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엮는 등의 방식으로 묶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12·3 계엄 선포와 동시에 곧바로 국회로 모여든 야당 국회의원과 계엄군 국회 집입을 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의 발 빠른 대처가 계엄 해제의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계엄으로 내란을 획책한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됐고, 나라는 여전히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혼란을 끝내고 경제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탄핵심판이 신속히 이뤄져야 하거늘, 윤 정권의 정부·여당은 탄핵심판 미루기에만 골몰해 있으니 속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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