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두 얼굴

김인수 사회교육부장

광남일보 기자 @gwangnam.co.kr
2025년 02월 02일(일) 18:09
[데스크칼럼] 또 터졌다고? 지난 설 연휴 초입에 들려온 소름 돋는 뉴스 하나가 지금까지도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바로 자경단 성 착취 사건이다. 경찰이 밝힌 일당의 범죄 실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당은 범죄 집단과는 다소 생뚱맞은 자경단(민간의 자가방어단체)이라는 이름으로 5년 동안 텔레그램에서 10대 청소년 160여 명을 포함한 남녀 234명을 성 착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수년 전 성 착취 동영상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박사방 N번방’ 사건과 판박이였다. 박사방 사건은 지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년여 동안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해 73명의 피해자가 있었다.

피해자 중 10대 여성 10명은 총책 A씨에게 성폭행과 불법 촬영을 당했고, 조직원 사이에서도 유사강간 같은 성 학대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10대 남성 피해자도 57명이나 됐다.

총책 A씨가 참여한 텔레그램 채널과 대화방이 무려 450여 개에 달했고, 직접 운영한 대화방만 60개가 넘었다.

이번 사건은 박사방 사건 때보다 규모가 더 크고 조직적이었으며 수법도 악랄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준다.

총책 A씨는 박사방 사건의 주범이 구속될 무렵인 2020년에 보란 듯이 텔레그램 방을 개설했다.

범행 대상은 주로 불법 딥페이크 제작이나 유포에 관심을 보인 남성들, 또는 성적인 호기심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피해자들은 조직원에게 개인정보 등의 약점을 잡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스스로 범행에 동조하고 가담하는 공범이 됐다. 이런 식으로 활동하다 검거된 조직원이 14명이고 이 중에는 고등학생 6명, 중학생도 1명도 있었다. 조직원까지는 아니지만 불법 성 착취물 제작 등에 가담한 범죄 혐의자도 73명이나 됐다.

조직은 매우 체계적으로 운영됐다. 33세인 총책 A씨는 ‘목사’로 불렸고, 그 아래에 ‘집사’ ‘전도사’ ‘예비전도사’ 순으로 계급을 구분했다. 조직원들은 범죄 성과에 따라 계층을 이동하고, 피해자에게는 피라미드 포섭 방식을 적용했다. 박사방 사건에서 가해자들을 ‘공직자’ ‘상류층’ ‘평민’ 등으로 등급을 나눴던 것과 유사하다.

이들이 만든 불법 합성물이 1500개가 넘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것만 1000여 개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을 조롱하면서도 잡히지 않던 자경단은 4년 넘게 운영됐다. 하지만 텔레그램 창업자가 범죄 방치 등의 혐의로 프랑스에서 체포되면서 조직의 전모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텔레그램 협조로 범인을 붙잡은 첫 사례라고 한다.

자신의 주거지에서 체포된 총책 A씨는 ‘박사방’의 박사 조주빈처럼 평범했다. 한때 직장을 다녔고, 자경단 운영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범행 동기는 ‘그저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가졌다’는 게 경찰 조사의 전부였다.

악랄한 범죄 집단의 우두머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평범한 이력이지만 그에게서 내재된 범행 동기는 소름을 돋게 만든다. 두 얼굴을 가진 성 착취범의 속내를 모른 채 평범한 이웃으로 대했을 이들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지금도 어디선가 제2, 제3의 자경단이 활동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경단까지는 아니더라도 SNS 상에서 많은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혹자는 이제 텔레그램이 범죄자들의 안전한 놀이터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한다. 텔레그램이 범죄 관련 자료를 수사당국에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성 착취물에 관심을 갖는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반짝 관심도 못 받는 상황이 너무 아쉽다. 12·3 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법꾸라지’(법률 미꾸라지) 행태를 두고 온 국민이 강제로 법 공부를 하고 있는 엄중한 시국 탓에 단발로 보도되고 바로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예년 같으면 몇날며칠 언론의 ‘머릿기사’를 장식할 만큼의 충격적인 사건인데도 말이다.

또 어디에서 똬리를 틀고 있을지 모를 성 착취 범죄를 색출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 착취 범죄는 끝까지 추적해 처벌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해야 범죄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다. 그러려면 이번 사건이 쉬 잊혀서는 안 된다.
광남일보 기자 @gwangnam.co.kr        광남일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광남일보 홈페이지(gwang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gwangnam.co.kr/article.php?aid=1738487380498730000
프린트 시간 : 2025년 03월 10일 18: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