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천형의 생’ 고스란히 시 속 투영

김은우 시집 ‘만난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은 있나요’
매혹의 순간들에 대한 뼈아픈 이별의 노래로 시화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2월 11일(화) 18:01
시집 ‘만난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은 있지요’ 표지
김은우 시인
광주 출생 김은우 시인이 네번째 시집 ‘만난 적은 없지만 가본 적은 있지요’(한국문연 刊)를 최근 현대시기획선 107번째 권으로 펴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자기만의 시 세계를 펼쳐온 김 시인은 첫 시집부터 이번 시집까지 전통적 서정의 세계는 물론, 그리움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는 자연적 상관물에 대한 천착을 통해 ‘불가능한 매혹’의 문제와 깊이 관련돼 있다. 그가 자연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할 때 더 선명히 드러나는 건, 잃어버린 이상향이나 공동체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너머’를 꿈꾸지만 기어코 소멸에 이르고야 마는 삶의 조건으로서의 한계와 그 처연한 물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매혹된 슬픈 천형의 생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시인은 ‘솟아올랐다가 추락하는 몸짓//착지하기 위해/같은 지점을 맴도는 공중걷기//사뿐 내려앉는 나비처럼/우아하게 우주의 한 점으로 부서진다’(‘발레리나’),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과감히 놓아주는/고립의 세계에 갇힌 이곳에선 모두가 외톨이’(‘그린란드’), ‘재미있는 이야기를 재미없게 하는/당신의 이야기가 길고도 지루한 시간’(‘열대야’), ‘홀로 남겨진 길고양이가/눈사람을 배웅했다’(‘배웅’), ‘고인 말들을 간직한 채 입이 얼어버리는/길고 어두운 동굴 같은 시간’(‘봄은 아직 멀었다’)이라고 노래한다.

이처럼 시인의 삶은 그리움보다 먼저 고독하고 척박한 지점에 가닿는 듯하다. 아니면 시적 화자의 지점이 삶의 고단한 시간들에 무방비로 노출된 듯 현재적 삶과 맞서 싸우는 시간들의 징표들이 읽힌다.

존재가 부서지고, 외톨이로 지내는 현실세계, 그리고 삶의 역동적 시간 대신 지루하기 이를데없는 삶의 지점들, 또 분주하고 각박한 현재적 삶의 한계가 그대로 노정된다.

하지만 시적 자아는 존재에 대한 확인 대신 가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으로 그 역할을 고백한다. ‘청춘’처럼 수정할 수도, 삭제할 수도 없는 시적 자아의 삶이 날 것 그대로 놓여져 있는 것으로 읽힌다.

이철주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그의 시집은 매혹의 순간들에 대한 뼈아픈 이별의 노래로 풀이된다. 이 평론가는 “살갗 깊숙이 파고들어 제 문장이 품은 열로 읽는 이의 말과 몸을 뜨겁게 데운다. 가끔은 물집이 잡히기도 하겠지만 그 물집이 잉태해 낼 어둡고 비릿한, 그러나 한없이 예리한 매혹에의 예감이 단 한 순간만이라도 선명한 의미로 존재하고 싶었던 모든 생들에게 마지막 열기를 불어넣는 것”이라면서 “이 불가해한 참혹은 우리 현실 속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을 오롯이 증명한다”고 평했다.

시인은 자서를 통해 “핏줄처럼 어둡고도 환한 어제로부터 달아나는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천천히 불이 되고 싶어요”라고 밝혔다.

이번 시집은 4부로 구성, 분주한 일상 속 틈틈이 시적 감성을 곧추 세워 창작한 시편 55편이 수록됐다.

김은우 시인은 1999년 ‘시와사람’ 신인상으로 등단, ‘바람도서관’, ‘길달리기새의 발바닥을 씻겨주다 보았다’, ‘귀는 눈을 감았다’ 등을 펴냈다. 현재 광양에 머물며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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