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꽃들의 천국…섬 곳곳 걸으며 사색하다

[문득여행]전남 고흥 쑥섬
나로도여객선터미널서 애도 선착장까지 배로 이동
전남도 제1호 민간정원…300여종 꽃과 나무 자생
국내 섬 중 유일한 고양이섬…아름다운 숲 선정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2월 12일(수) 18:22
쑥섬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바다 풍경
남도땅은 국내에서 많은 의미를 띤 공간이다. 제일 먼저 봄을 맞아 들이는 곳이자 농도로서 먹거리가 넘친다. 여기다 2면이 바다이며 갯벌이 무진장 발달된 해안을 가지고 있어 해산물이 풍족하고, 그런 자연에 기대며 살아가는 남도민들의 풋풋한 인심까지 더해져 살기좋은 지역임에는 틀림없다. 전국 8도 중 경상북도와 강원도에 이어 세번째로 넓은 면적을 확보하고 있는 지역으로 비옥한 옥토에서 온갖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는 점은 남도의 최대 강점이다. 비옥한 옥토로 인해 다양한 먹거리가 생산돼 인심이 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먹거리 못지 않게 관광명소 또한 차고 넘치는 곳이 남도땅이다.

우리나라 해안선 총 길이는 1만5285.4㎞에 달하지만 전남 영광에서부터 광양에 이르기까지 전남 해안선은 6743㎞로 추정된다. 해안선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풍경까지 하면 살아서 다 못가고 갈 수도 있다. 전남은 그만큼 숨겨진 명소가 많다는 이야기다.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띈 곳은 고흥 쑥섬이다. 쑥섬은 숨겨진 보배와 같은 섬이다.

그에 앞서 방문한 바 있는 강진 가우도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우도는 강진에 8개의 섬이 있는데 유일한 유인도이다. 강진 대구면을 잇는 저두출렁다리(438m)와 도암면을 잇는 망호출렁다리(716m)에 연결돼 있어 접근이 편하며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 ‘함께해(海)길’(2.5km)이 구축돼 산과 바다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로 많은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쑥섬은 광주에서 140㎞가 넘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쑥섬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바다 풍경
진도대교를 지나 나로 1교, 나로 2교로 들어서면 외나로도 서해안 초입에 애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곳이 쑥섬이다. 쑥섬은 예전에 쑥이 많이 자랐기에 그렇게 불렀지만 지금 고양이들이 많이 서식해 일명 ‘고양이 섬’이라고 불린다.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애도 선착장까지 3분 정도 소요된다. 이 아름다운 섬에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흥군에서 출렁다리 건설을 요청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거리가 초과되면 보를 세워 다리를 놓아야 하기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게 여객터미널 관계자의 귀띔이다. 현재로서는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분간 3분 안팎의 거리이지만 배로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인 듯하다. 그래서 출렁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선박으로 드나들어야 할 듯하다.

쑥섬이 의미있는 데는 전남도 제1호 민간정원이라는 점이다. 정원이라고 하면 섬이 그냥 자연 정원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손이 어느 정도 탄 정원으로 이해하면 된다. 손이 탔다는 것이 오염이 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섬을 가꿨다는 뜻이 더 적절할 것이다. 애도의 역사는 16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가 조선 현종 때였다. 돌산군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흥군 봉래면에 속하게 됐다는 기록이 있다. 남도 끝자락이어서 날씨가 따뜻해 쑥이 잘 자라는 토질적 환경을 가지고 있다보니 지천에 쑥이 널려 있게 되면서 섬의 이름이 쑥섬으로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탁 트인 다도해 절경과 방파제로 연결된 무인도의 기암괴석, 울창한 난대림 및 사계절 정원 등을 갖추고 있어 섬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섬이다. 쑥섬이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입소문을 타 멀리 알려지고 있는 이면에는 현재 300여종의 꽃들로 꾸며져 있는 별정원 등과 200m에 달하는 수국길을 비롯해 무심하게 바다 바람을 맞아 들이는 각종 겨울꽃들, 다도해와 수평선을 함께 바라보며 거닐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인 3㎞에 이르는 몬당길(야생화길), 수백년의 역사를 추정해볼 수 있는 돌담길, 남해안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난대수종 원시림 등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 숲 둘레길
성화등대
신안 안좌도 퍼플섬의 아름다움이나 영광 낙월도의 온몸을 태우며 서해바다로 지는 낙조 풍경, 출렁거리며 건너가는 재미가 솔솔한 강진 가우도의 멋진 풍광도 쑥섬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스무살 전후의 MZ 세대들에게도 인기를 끄는 섬이 이곳 쑥섬이다. 고양이가 주민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어서다. 주민들이 고양이를 저주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받아들이다 보니 고양이들 편의시설이 주택 담벼락에 설치돼 있어 방문객들이 고양이들을 만져보며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섬이다.

방문했던 날에도 고양이들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집에서 키우고 싶은 것이 고양이와 강아지이지만 아이 키우는 것보다 손길이 더 간다는 소리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자고 난리지만 쉽사리 그것을 들어줄 수가 없어 이렇게 야외에 나왔을 때 자연스럽게 접촉하고 만족하기를 바랄 뿐이다. 강아지의 경우 광주 충장로 애견카페 꾸루꾸루 같은 데를 가서 거기 맡겨진 강아지들과 놀다가 돌아오는 것이 전부가 됐다. 그러니 고양이를 합법적으로 섬 전체에 풀어놓고 자연스럽게 키우는 쑥섬에서의 냥냥이(고양이의 또 다른 명칭)와 보내는 시간은 모든 고민을 일거에 덜어주고도 남는다.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애도까지는 500m가 약간 넘는 거리이지만 입도하는 날,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탓에 포말로 인해 안경에 물기가 다소 맺혔다. 그래도 다들 신난 표정은 숨길 수 없었다. 쑥섬은 탐방로 입구나 사랑의 돌담길 인근으로 올라가면 경사가 져 힘들기 때문에 방파제로 연결된 무인도 쪽으로 와서 측면에서 둘레길 산책을 시작하면 초장부터 힘을 빼지 않아도 된다. 섬 곳곳이 포토존으로 안성맞춤이다.

마을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공동 우물
고양이 조형물
400년만에 개방된 난대원시림이나 환희의 언덕, 별정원, 가을정원(우돌피언정원), 달정원(문학정원·인연정원), 여자산포바위, 남자산포바위, 겨울 정원(동백·금잔옥대), 신선대, 성화등대와 해안절벽 등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 섬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군데 군데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와 나태주 시인, 김수근 건축가 등 문인과 유명인사들의 시문과 명문이 세워져 있어 읽는 재미도 솔솔하고, 실제 위안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환희의 언덕 인근에는 핑크뮬리밭이 조성돼 있어 젊은 연인이나 부부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모두 그냥 스쳐 지나가지 못하고 저마다 인생샷을 찍는다. 섬의 정상부에는 치유정원(애기동백·수선화·허브)과 수국정원, 수국길이 조성돼 있어 운치가 절정에 달한다. 더욱이 2월에는 동백꽃이, 3월에는 돌갓꽃, 유채, 금잔화, 마가렛, 수선화 등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꽃들이 섬을 수놓는다. 2017년에는 산림청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아름다운 숲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후박나무나 푸조나무 등 흔히 볼 수 없는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앞서 언급했듯 주민보다 고양이가 더 많아 국내 유일한 고양이섬으로 통하고 있어 그렇게 많은 섬들 중 섬의 특징이 확실한 편이다. 여전히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반드시 가봐야 할 섬이다. 섬 전체가 통째로 정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측면으로 섬을 일주하면 그렇게 많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섬의 정상부에는 나로도 앞바다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조성돼 있고, 고양이를 조형물로 한 포토존도 구비돼 있어 즐거움이 배가된다. 해풍을 맞으며 바다풍경을 눈과 마음에 담아갈 수 있도록 의자도 설치돼 있다. 쑥섬에 대해 ‘왜 이제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쑥섬에서 종기처럼 달라붙어 있던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걸으면서 사색할 수 있는 섬으로 부족함이 없다. 여기다 꽃들을 보고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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