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떠오르는 것

이당금 예술이 빽그라운드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2월 13일(목) 18:34
이당금 예술이 빽그라운드 대표
[문화산책] 그려… 그려…달은 열여샛 달이라고 안 하드냐….(심상대 소설 ‘망월’ 중)

푸른 새벽이다. 서거서걱 대나무를 흔드는 잔설 바람이 차다. 늙은 어미는 밥 보시기에 쌀을 호복하니 담아 초 한 자루 꼽아 뒷 곁 장독대에 정갈하게 올리고 자신의 몸의 일부마냥 굽어진채로 엉거주춤 쪼그리고 앉는다. 옷 매무새 따위 살짝 섶을 추스리고 메마르고 주름져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가 맞닿지 않은 두 손을 모아 비벼댄다.

서르륵 서르륵 서륵 서륵 늙어간 세월의 속도로 두 손을 비비면 마치 염불 장단이다.

살포시 내려앉은 두 눈은 보살님의 눈매요, 달싹달싹 웅얼거리는 입매는 첨벙거리는 우물이오, 엉거주춤 앉은 자세는 등신불이니 그야말로 미륵님이시다.

‘액을 막자 액을 막자/정월에 드는 액은 이월로 막아내고/이월에 드는 액은 삼월 삼질에 막아내고/삼월에 드는 액 사월 팔일 막아내고/사월에 드는 액은 오월 단오에 막아내고/오월에 드는 액 유월 유두 막아내고/칠월에 드는 액 팔월 한가우 막아내고/팔월에 드는 액은 구월 중구 막아내고/구월에 드는 액 시월 모날 막아내고/시월에 드는 액은 동짓달 동지로 막아내고/동짓달에 드는 액은 정월 섣달 그믐날/떡시리로 막아내세 어찌 아니가 좋을소냐/섬겨 드리자 고사로다 고설 고설’

어미의 주름지고 마른 손바닥이 따숩게 온기를 모아 밥을 짓는다.

모락모락 달큰한 밥 냄새가 푸른 잔설을 흔든다.

어미보다 한발 늦은 닭이 우렁차게 목청을 돋운다. 시나브로 환한 빛이 밝아온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달빛은 어둠의 심지로 함께 공존하며 세상천지를 밝히듯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덕담으로 쓰인다. 토닥토닥 조만간 곧 밝은 빛이 될 거야.

크게 떠오르는 것!

유난히도 어둠속을 헤매이고 있는 듯한 을사청사년.

새해가 시작되었음에도 어쩐지 아직도 헌해를 살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세월의 끈을 잠시 놓친 것처럼 헤매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임대 폐업 문구가 코로나 시절보다 더 많이 보인다. 체감온도는 깡겨울 시베리아 동토다.

문화예술 창작지원, 교육지원 사업비등 대부분 대폭 삭감되어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동료 예술가들이 이 눅진한 시간을 잘 견디고 있는지 차마 안부를 묻기에도….

K컬쳐 저변에 문화예술인들의 빛나는 어둠으로 명실상부한 문화선진국이 이래도 되는가.

중앙집권에서 지역문화 분권으로 이전되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면서 문화예술가는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쟁, 경쟁, 살아남아야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니. 여기저기 웹사이트를 서칭하고 눈이 벌겋게 서류를 작성하고 나보다 더 나를 부풀리다보면 헛개비마냥 기진맥진하다. 문화예술 자생력이란 허울좋은 명목은 사실상 경쟁을 부추기면서 각자 도생하라 한다.

살아남아라 그리하면 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은 인간 최고의 목적인 행복을 성취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하지만 예술가 없는 예술이 인간의 행복을 도울수 있을까.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자가 산자를 구한다고 한 한강 작가의 명언처럼 계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는 예술 시대를 펼쳐보여야 하는데. 어쩌겠나. 조금 더 힘을 내야지 목소리를 내야지, 행동을 해야지.

며칠간 폭설이 내리고 한바탕 비가 쏟아진 뒤 떠오른 만달이라 그런지 마음이 풍성해진다.

마른 잔솔가지에서 불씨 피어나듯 여러분의 삶과 예술가의 삶이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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