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산 확대,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3월 06일(목) 18:08
강혜경 문학박사·문화기획자
[문화산책]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선거철 공약 중 하나, ‘문화예산 확대’는 벚꽃처럼 피었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는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는 중요한 요소다. K-POP, 드라마, 웹툰, 영화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문화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정책과 충분한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다.

문화예산 확대가 단순한 예술인 지원이 아닌, 국가 경쟁력 강화의 핵심 전략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는 문화예산을 국가 예산의 2.5%까지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이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 2위의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실현되지 못했고, 여전히 문화예산은 국가 예산의 1% 내외를 맴돌고 있다. 이 공약이 단순한 선거용 공약이 아니었음을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문화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국가 브랜드를 강화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해왔다. 한국 역시 문화산업을 국가 성장 전략의 중심으로 삼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문화예산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BTS의 성공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 IMF 경제 위기 이후, 정부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지정하고 정책적 지원을 강화했다. 한류 확산을 위한 해외 마케팅, 제작비 지원, 한류 문화상품 개발 등의 정책이 지금의 K-콘텐츠 산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 문화산업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으며, 한국 콘텐츠의 성공을 모방하려는 경쟁국들의 움직임도 거세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문화예산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특히, 문화예산 확대는 수도권 중심의 문화 지원을 지역으로 확장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의 문화정책은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에 비해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부족해 창작 활동에 대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를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계는 수도권과의 불균형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광주는 ‘예향(藝鄕)’이라 불릴 정도로 예술적 전통이 깊고,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역사적 경험이 문화적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광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라는 강력한 문화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예산 삭감과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ACC는 아시아 문화 교류의 중심이자, 지역 문화예술의 허브가 되어야 하지만, 실질적인 예산과 정책 지원 없이 지속 가능한 운영이 어렵다. 문화예산이 확대된다면, 광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 문화콘텐츠 개발이 활발해지고, 지역 예술가들이 창작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다. 또한,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국제 문화 행사를 더욱 내실 있게 운영하여 글로벌 문화도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다.

문화예산 확대는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대와도 직결된다. 문화는 특정 계층만이 누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쉽게 접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광주는 5·18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한 도시지만, 이를 뒷받침할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콘텐츠(연극, 다큐멘터리, 음악, 전시)를 제작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선보이려면, 안정적인 예산 확보는 필수적이다. 또한, 지역 예술인들이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공 창작 공간 확대, 창작 지원금 강화, 신진 예술가 육성 프로그램 등에 대한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문화정책을 위해서는 단순한 예산 증액을 넘어,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술 창작 기금을 확대하고, 문화산업 융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문화의 융합을 지원하는 정책도 중요하다. 광주는 AI, XR(확장현실) 등 디지털 기술 기반의 콘텐츠 산업 육성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지역 특색을 살린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리라.

문화예산 확대는 대한민국이 단순한 문화 소비국이 아니라, 문화 생산국으로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국가 전략이다. 광주를 비롯한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가 수도권과의 격차를 줄이고, 독자적인 문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혹여 벚꽃 대선이 치러진다면 문화예산 확대라는 공약이 다시 주목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약속이 더 이상 선거철 한때 반짝 피는 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문화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강화하고, 모든 국민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문화는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광남일보 홈페이지(gwang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gwangnam.co.kr/article.php?aid=1741252110501619125
프린트 시간 : 2025년 03월 07일 01:0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