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시간들…산문으로 기록한 삶 이야기 시 쓰며 후학 양성 정끝별 시인 산문집 잇따라 출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
2025년 03월 13일(목) 1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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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 쓰기 딱 좋은 날’은 난다에서 기획한 ‘시의적절’ 시리즈로 선보이는 것이다. ‘시의적절’ 시리즈는 일년 동안 열 두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 나가는 이야기다. 매달 매일 하나의 이름이자 365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로 꼭 채워온 시리즈 중 하나다. 매일 한 편씩 매달 한 권의 책이 나온다.
지난해 이어 올해도 시리즈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 시인이 올해 서문을 열었다. 시인은 본인 이름이 유년 시절 못마땅했다는 고백부터 한다.
‘어릴 땐 튀는 이름이 못내 못마땅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아버지가 주신 끝별의 의미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시였구나! 하는 자각이었죠.누구에게나 다르게 지각되는 끝이라는 시공간적 지점과 수억 광년 전에 폭발해 이미 사라진 존재인데 멀리 높게 빛남으로써 어둠 속 지도가 되기도 하는 별 같은 존재가 바로 시가 아닐까요.’(본문 24∼25쪽 중에서)
끝별에서 문학적 이름이었음을 깨달으며 그것이 바로 시였다는 술회를 한다. 또 시인은 갑자기 행동하는 모양 혹은 어떤 감정이나 생각 따위가 갑자기 솟구치거나 떠오르는 모양을 의미하는 ‘와락’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들려준다.
‘와락은 쏠림이고 다급함이다.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밀려옴이다. 떠나감이다. 와락의 순간들이 가까스로 지금-여기의 나를 나이게 한다. 와락 안겨오고 와락 떠나가는 것들, 와락 그립고 와락 슬픈 것들, 와락 엄습하고 와락 분출하는 것들, 와락 저편으로 이편의 나를 떠넘겨주는 것들, 그런 물컹하고 축축한 와락의 순간들이 밋밋하게 되풀이되는 이 삶을 울그락불그락 살아내게 한다.’(본문 35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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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 |
시인은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라는 산문에서 ‘사랑은 밀려온다. 막 밀려온다. 그리고 저 꽃들처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저 음악처럼 온다. 잠결에도 막 밀려오는 것이어서, 사랑은 잠의 품속에서도 부화하는 것이고, 굳이 언어의 옷을 입지 않아도 그 자체로 시인인 것’이라고 적고 있다.
또 시 ‘함박눈이 그렇게 백색의 점묘화를 그리던 한밤 내’를 통해 ‘그대 우리는 둘이서//함박눈이 한밤의 길 바닥에/번지는 잉크처럼/점점이 검은 그림자를 피웠다 사라지는 걸 보았지//가로등 아래서//…후략…’이라고 노래한다. 이번 저서에는 시 9편, 에세이 23편 등 총 32편이 실려있다.
이어 가까스로 일인칭의 민낯을 담은, 명실상부한 첫 산문집인 ‘깨끗한 거절은 절반의 선물’은 일상에 카메라를 장착한 예능 다큐 같은 글들을 모았다고 한다.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일상의 리듬이 무너지면서 몸에 이상 신호들이 왔었고,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다급하게 모은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한 추억 속 에피소드, 여느 문장으로도 요약되거나 정리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 아이들을 키우며 다시 배운 인생, 시와 문학 속에서 깨치는 앎에 대한 사색 등이 망라됐다. 시인이고 평론가이며 교수이기 전에 딸이고 엄마이며 아내인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동시에 기념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가장 순도 높은 이야기들이다.
특히 이 산문집은 우리가 삶의 잔잔한 방황 속에서 헤맬 때,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권태에 지쳐 있을 때, 친근한 듯 따끔하고 웃긴 듯 날카롭게 삶의 소중한 지침들을 들려준다.
이 산문집은 ‘손바닥을 마주치다’를 비롯해 ‘그럼에도 아버지’, ‘콩닥콩닥 나대는’, ‘물론이라는 엄마들’, ‘한눈을 팔다’ 등 제5장으로 구성됐으며, 총 51편이 수록됐다.
저자는 “여기 묶인 글들은 내 삶이 어둠에 잠기지 않도록 삶의 길목들에서 가로등처럼 환한 불이 됐던 편편의 점등과도 같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사람, 그들의 이름에 따뜻한 빛을 내걸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인 셈”이라면서 “내가 모방하고 인용하고 표절하며 살았던 가족들, 그러니까 내 시작과 끝 혹은 내 둘레와 바탕에 대한 기억이기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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