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판정신' 강했죠…늘 저항성 견지"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 이명한 회장 만나보니
군부독재 민주주의 파괴하자 반골기질 민중문학 추구
내달 국제심포지엄 공동주최…10주기 시선집 구상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4월 09일(수) 18:14
이명한 회장은 문 시인에 대해 “사회 비판정신과 저항정신이 강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저희 집안과 비슷하게 늘 저항성을 견지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군부독재 시절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민중 시인으로 현대시문학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전남 화순 출생 문병란 시인(1935∼2015)이 떠난 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그는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알려진 ‘직녀에게’의 시인으로 생전 조선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시집 ‘땅의 연가’와 ‘정당성’, ‘죽순밭에서’, ‘무등산’, ‘양키여 양키여’를 망라해 시집과 시선집 26권을 펴내는 등 투사 시인으로 활동하며 지냈다. 제도권 교육에 돌아온 것은 1988년이었고, 그 전에는 학원 선생으로 지냈다. 그의 삶은 정년 퇴직 이후를 빼면 늘 투쟁의 현장에 머물렀고, 그의 사유 역시 민주화에 모아졌다. 그의 사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그를 기리는 모임이 꾸려졌다.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는 그의 정신과 뜻을 이어받은 유지들을 중심으로 2020년 말 결성돼 활동에 들어갔다.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구심점이 돼 회장으로 활동 중인 원로 소설가 이명한씨(94)의 소회는 남다르다. 문인협회 중심의 한국문단이 군부독재정권 아래에서 서정문학에 기치를 내걸었지만 한국예술가협회와 함께 제도권 언론에 호헌조치를 지지하는 광고를 내는가 하면 전두환 지지성명을 내는 등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군사정권에 친화적 입장을 드러내면서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문병란 시인은 물론이고 송기숙 소설가(1935∼2021·전 전남대 교수)와 함께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광주전남민족문학인협의회를 결성하게 됐으며, 생전 교류를 지속적으로 했던 문 시인에 대한 기억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평소 국경과 시대를 초월해 우리 문학의 공유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외국 진보 문학의 수용에도 적극적인 이명한 회장은 2022년 5월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공동주최 아래 ‘조선 저항시인과 탈식민주의’라는 타이틀로 ‘한일국제심포지엄’을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이어 오는 5월 18일에는 광주시립미술관, 광주전남작가회의,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와 공동으로 국제심포지엄을 열 방침이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의 학자들이 광주를 방문해 양심적 작가 마쓰다 도키코(1905∼2004)에 대한 본격 논의를 앞두고 있다. 광주의 시인 문병란과 마쓰다 도키코를 비교문학 관점에서 논하는 발표와 함께 문병란의 시도 낭송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처럼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가 서서히 활동 보폭을 넓히고 있는 가운데 문병란 시인 10주기를 앞두고 지난 8일 오후 이명한 회장과 만나 향후 기념사업회의 활동 방향과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 회장은 문 시인 및 송 교수와 함께 서울보다 한발 더 빨리 민족문학 기치를 내건데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보수 문학단체와 결을 달리해야 했기에 민족과 통일을 핵심 담론으로 내세워 셋이서 공동대표를 맡는 것으로 하고, 진보문학 단체의 출범을 알렸다.

“처음에 문 시인은 시 ‘가로수’ 등 서정적인 시를 썼어요. 민족정신이나 전통적인 유무형 유산 등을 시적 소재로 서정시를 창작했지만 군부독재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정권 연장에만 혈안이 돼 ‘이렇게 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 민중문학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생전 지켜본 문 시인은 사회 비판정신과 저항정신이 강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저희 집안과 비슷하게 늘 저항성을 견지하곤 했죠. 지역의 한 대학교수는 나중에 자기 노선에 대한 자성을 했지만 그 전에는 문 시인을 너무 진보적이라고 한 적도 있었지요.”

문병란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인터뷰에 나선 이명한 회장.
한 마디로 반골기질이 있는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회장은 순수하게 서정성을 지향하다가 시집 ‘정당성’ 등을 출간한 1970년대부터 완전 저항적 문학인으로 변했다는 설명이다. 문 시인은 반골 기질을 바탕으로 역사성을 담보로 민중지향적인 길을 꿋꿋하게 걸었다. 형제지간에도 반골기질을 드러냈다고 전해진다는 후문이다.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보면 권력 있는 쪽이 아니라 그 권력으로부터 짓밟힌 쪽에 서게 되니까 일부 인사들이 문 시인을 너무 진보적이라고 단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다.

이 회장은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 결성 후 생전에 문병란 시인이 추앙하던 이육사, 윤동주, 한용운, 이상화, 심훈, 조명희 등 민족시인들의 시 모음집을 우리말과 일본어로 묶어 펴낼 때 백낙청 선생(전 서울대 교수), 민영돈 조선대 전 총장, 박맹수 전 원광대 총장 등이 기념사업회 고문으로 동참해 협력을 아끼지 않은 점을 거론하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기념사업회가 탄탄하게 본 궤도에 오르기를 기대한다면서 우선 10주기를 맞는 의미를 살려 그의 대표시를 엄선, 시선집을 펴낼 구상을 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주옥같은 작품들을 모아 시선집을 펴내는 게 시인 문병란의 민족정신을 기리고 추모에 걸맞는 선양 사업이 될 것 같은데, 출판비용 등 마련이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서울에 있는 문 시인의 대학 제자들이나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논의해보고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적임자를 좀 찾아볼 생각입니다. 시선집 출간을 생각한데는 기념사업회의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아울러 5월 행사도 잘 치러내야 하겠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지지를 해 주시면 어려운 일 하나 하나 풀려가지 않을까요.”

이 회장은 마지막으로 올해 5·18민중항쟁을 맞아 열릴 국제심포지엄 때 문병란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외국인 참여답사객들과 함께 시인의 시를 되새기면서 국립5·18민주묘지에 자리한 시인의 묘지를 참배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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