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에 쫓긴 망자 신발 우리가 신겨드릴게요"

[광주 동구 미로센터 ‘오월, 종이로 빚은 시간’ 가보니]
엄정애 작가·참가자 등 5·18민주화운동 심상 공유
"한 맺힌 그날 기억하자"…16개 종이작품 완성 목표

송태영 기자 sty1235@gwangnam.co.kr
2025년 04월 16일(수) 18:17
광주 동구 미로센터는 지난 15일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오월의 기억을 되새기고 그 의미를 창작과 기록으로 이어가고자 ‘오월, 종이로 빚는 시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80년 5월 계엄군에 쫓기다 잃어버린 신발을 종이로 만들어 보며, 그날의 아픔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광주 동구 미로센터는 지난 15일 3층 스튜디오실에서 ‘오월, 종이로 빚는 시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저변에는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아 오월의 기억을 되새기고 그 의미를 창작과 기록으로 이어가자는 의도가 담겼다.

이곳에는 엄정애 작가, 임아영 문화기획자, 참가자 8명이 종이로 신발·인형을 만들며 그날의 심상을 공유했다.

엄정애 작가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전시된 망자의 신발을 소개한 뒤 자신이 박스종이로 만든 하얀 운동화와 슬리퍼 작품을 보여주며 “그들이 놓친 신발을 우리가 신겨드리자”고 말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은 5·18 당시 공포스러웠던 현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희준(72)·김희정(67·여) 부부는 “1980년 5월18일 당시 너무 무서워 아무 데도 못 나갔다. 건물 옥상에는 시민군이 숨어 있었고, 헬기가 날아다녔다”며 “상무관에는 흰 천을 덮은 시체 무리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희정씨는 “7년 전 오월 해설사를 하기 위해 교육을 받았지만 내가 겪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며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발설할 수 없는 역사였다. 인형·신발 만들기로 다른 참여자와 함께 한 맺힌 그날의 아픔을 나눌 수 있어 뜻깊었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광주 동구 궁동 미로센터 3층 스튜디오실에서 진행된 ‘오월, 종이로 빚은 시간’에 참가한 엄정애 작가(왼쪽 첫번째)와 참여자들이 종이 인형을 만들고 있다.


참가자들은 김희정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5·18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앞치마와 장갑을 착용한 8명의 참가자는 종이상자를 골라 재단하며 신발 제작에 열을 올렸고, 엄 작가와 임 문화기획자는 참여자 한 명씩 다가가며 작업을 도왔다.

운동화, 고무신, 꽃신 등 신발 형태가 어느덧 완성되자, 참가자들은 신문지와 소포지에 풀을 붙여 덧씌웠다. 이후 1980년 5월 당시 시민이 남긴 흔적과 감정을 종이 인형으로 표현했다.

엄 작가는 미리 만든 갓을 쓴 조상 인형과 작은 인형을 보여준 뒤 “조상 인형은 작은 인형(5·18 영령)을 보살피는 존재다”며 “가엾은 영혼을 다독이고 위로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하얀색 도화지에 인형을 그린 뒤 곧바로 신문지를 감싸며 나만의 조상 인형과 작은 인형을 만들었다. 이들은 작품을 보며 각자만의 5·18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참가자들은 “5·18 광주정신의 의미를 다시 느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내가 만든 인형과 신발에 당시 민주주의를 얻고자 희생했던 열망이 담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8일부터 5월3일까지 진행될 ‘오월, 종이로 빚는 시간’을 통해 만든 신발과 인형 등 작품 16개는 미로센터 1층 전시실에 전시할 예정이다.

한편 2019년 11월 문을 연 광주 동구 미로센터는 문화·도시·재생을 실현하는 공간으로서 광주 문화예술의 원류인 예술의 거리에 ‘새로운 세대·새로운 시대’를 위한 문화예술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 15일 광주 동구 궁동 미로센터 3층 스튜디오실에서 진행된 ‘오월, 종이로 빚은 시간’에 참가한 엄정애 작가(가운데)와 참여자들이 종이 신발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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