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해남서 농사짓는 ‘농부시인’ 에세이 선봬

오형록씨 ‘농사꾼 시인 희망일기’ 출간
여러 시행착오 끝 정착…‘일본 여행기’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4월 17일(목) 18:17
농부시인 오형록씨
서울에서 생활하다 연로한 모친을 모시기 위해 고향 해남으로 돌아온 뒤 농사에 전념해온 농부시인이 에세이집을 펴냈다. 주인공은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어온 해남농사꾼 오형록씨로, 수필집 ‘농사꾼 시인 오형록 희망일기’(문학들 刊)를 최근 펴냈다.

오씨는 1980년대 후반 서울의 작은 수출업체에서 표구 기술자로 지냈으나 결혼 직후 연로한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귀향을 결심해 해남으로 20여년 만에 돌아와 농사꾼이 됐다. 하지만 2003년 5월쯤 불볕더위 속에서 오이를 수확하던 중 번개처럼 시상이 떠올라 문학의 길로 빠져들었다. 일의 노예로 전락한 자신을 발견하고 촌각의 시간을 아껴 글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그해 겨울 난생 처음으로 응모한 문학상에 입상하게 된다. 그것이 2014년 계간 ‘열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일이다.

그의 귀촌은 값비싼 수업료를 내야만 했다. 정부보조사업으로 비닐하우스 991.7㎡에 고추 모종을 심었으나 미리 토양 살충제를 하지 않아 낭패를 봐야 했고, 앙고라토끼 20마리를 1년 만에 500여마리로 증식해 부농의 꿈을 꾸었으나 중국과의 수교로 토끼털 값이 폭락해 무료로 토끼를 나눠주며 비통한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배추 폐기 처분’ 대목에는 농촌살이의 어려움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요즘 마을 곳곳에 가슴 아픈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애지중지했던 월동배추밭을 갈아엎고 있기 때문이다. 배추 모종부터 정식, 관수, 추비, 농약, 결속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했던 배추밭을 눈물을 머금고 갈아엎는 농민의 마음은 어떨까? 당신은 한 번이라도 농민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성난 트랙터의 울음소리, 폐기 처분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처참한 몰골에 트랙터라고 마음이 편할 리는 없겠지. 성난 트랙터의 검은 콧바람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고 적고 있다.

‘농사꾼 시인 오형록 희망일기’(문학들 刊)
그래서 그는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날 밤새워 비닐하우스 지붕을 넘나들며 로프 결속 작업을 해야 했던 일 등 누구보다도 열심히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농사꾼으로 보낸 시간들이 여과없이 담겼다.

특히 3장 수록된 ‘일본 여행기’는 2019년 1월에 도쿄의 히가시나카노 인근으로 떠나는 기행문으로, 신주쿠의 재래시장 방문 및 고속열차 로망스카 하코네 유모키행 탑승,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숲속의 유토피아 고라역, 소운잔역에서 탑승한 로프웨이를 통해 보게 된 도겐다인 호수의 비경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 보여준다. 생생하고 가슴 떨리는 여행기로 손색이 없다.

오형록 농부시인은 1962년 전남 해남군 현산면 고담리 출생으로 계간 ‘열린시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붉은 심장의 옹아리’, ‘오늘밤엔 달도 없습니다’, ‘꼭지 따던 날’, ‘희아리를 도려내듯이’, ‘빛 하나가 내게로 왔다’ 등을 펴냈으며 평화 주제 문학 작품상, 시사문단 문학상(본상) 등 다수 문학상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창작지원금 수혜 대상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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