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로 돌변한 주정공장의 아픔 상기

안오일 작가, 제주 ‘4·3항쟁’ 공간 그림동화로 형상화
역사 어두운 단면 되새겨…친근하게 이해하도록 구성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4월 22일(화) 18:20
제주 4·3항쟁 공간들을 찾다보면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이라는 곳이 있다. 주정공장수용소 공간은 무고한 생명들을 탄압했던 제주민들의 처연한 아픔을 증언하는 곳이다. 제주 항쟁 때 행방불명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공간으로 4·3항쟁 답사객들이 반드시 둘러보는 필수코스의 하나다. 제주 4·3항쟁은 광주 5·18항쟁과 맞닿아 있다. 광주는 제주의 아픔을 그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이해의 폭이 넓다. 이런 가운데 5·18항쟁의 정신이 서린 광주 사람이 제주4·3항쟁의 기억을 담고 있는 공장을 통해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는 동시에 희생자들을 잊지 말고 원혼들을 위로하며 항쟁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로 집필한 그림동화가 나왔다.

광주를 연고로 시와 아동문학, 청소년 소설 등을 꾸준하게 집필하며 폭넓은 문단활동을 펼쳐온 안오일 작가가 역사가 살아있는 그림 동화 ‘기억 공장’을 노는날 그림책 22번째권으로 펴냈다. 그림은 조형예술을 전공한 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신진호씨가 맡았다.

이 그림동화는 주정 공장에 담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주정을 만들고, 사람들의 희망을 담던 공장은 한순간에 절망이 가득한 공간이 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공장은 그 터에 다시 세워져 참혹한 기억을 노래한다. 스토리는 주정공장의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지던 어느날 무거운 군홧발 소리가 들려온다. 주정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쫓겨난다. 공장 관리인에서부터 공장에서 일했던 찬희 아빠와 찬희도 그 모습을 감춘다. 그런데 텅 비다시피한 주정으로 죄없는 사람들이 붙들려와 갇히기 시작한다. 감옥으로 바뀐 것이다.

주정공장은 1943년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 주정 공장이 본이름으로 해방전후 제주의 주요 산업시설이었으나 4·3당시 수용소로 활용되면서 역사적 풍파의 공간이 됐다. 혹독한 고문 후유증과 열악한 수용 환경 때문에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이 그림동화는 이런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상기시킨다. 특히 어린이 독자들에게 쉬운 이해를 위해 활자수를 줄이고 그림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가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꿈이 많았다고 한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인조인간이 되고 싶기도 했고, 나쁜 사람을 잡는 형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또 진실을 추구하고 알리는 기자가 되고 싶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데미안’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꾸게 됐다. 작가는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도 하지만, 자신의 틀을 깨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그 매력에 빠져 결국 작가가 됐고, 힘 있고 따뜻한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림책 ‘딱지 딱지 등딱지’, ‘여순에 핀 빨간 봉선화’, 동화책 ‘호야, 아빠를 구합니다!’, ‘외계에서 온 전기수’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다수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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