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춘향가’ 대신 현대적 접근 재해석

정범종 장편소설 ‘춘향의 친구’ 출간…극 펼치는 듯
극작가 이민규·연출가 김윤도 합의 속 이야기 전개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5월 25일(일) 18:19
정범종 작가
정범종 작가의 장편소설 ‘춘향의 친구’가 문학들에서 출간됐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작가의 시각은 이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맞춰져 있는 듯하다. ‘춘향가’의 수많은 이본을 읽은 소설 속 윤도는 춘향을 위한 합창이 아닌 춘향이 관객을 위해 부르는 노래, 즉 춘향의 독창을 무대로 올리고 싶다며 새로운 해석을 찾고자 한다. 극작가인 민규는 한때 신문기자였던 식당 주인이 춘향을 가리켜 ‘혁명가’라고 부른 점에 주목한다. “거부를 이어”가는 것, “혁명은 거부하는” 것이기에 변 사또의 수청을 목숨을 걸고 거부한 춘향은 혁명가라는 것이다.

작가는 원래 소설보다 희곡에 능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희곡으로 등단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광주시립극단 희곡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한 편의 극을 펼쳐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한반도에서 “지난 200년 동안 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성춘향’이라는 극작가 이민규와 연출가 김윤도의 합의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춘향의 친구’ 표지
두 친구가 올리려는 연극에서 주인공 역을 맡게 된 연극배우는 신초희다. 그녀는 신윤복의 ‘미인도’에 그려진 여인이 성춘향이었을 거라 상상하며 기생을 연기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기생이 입었던 한복을 찾는 등 자신이 맡은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처럼 ‘춘향의 친구’는 단순히 ‘춘향전’을 연극으로 올리려는 소설이 아니라 한 편의 연극을 올리기 위해 거쳐야 할 여러 고난들, 그리고 그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각자가 맡은 역할 속에서 맞부딪히는 고뇌에 초점을 맞춘, 결과가 아닌 과정의 소설이다.

한때 부모의 기대를 받았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한 연출가 김윤도는 대본이 완성되기도 전에 좌절을 겪는다. 자금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강남의 아파트를 미리 물려받기 위해 위장 결혼까지 계획한다.

희곡을 완성해 가던 민규 역시 ‘자기 표절’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가 올리려고 했던 연극의 원본 ‘춘향전’에는 수많은 이본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그보다 많이 쓰인 소설은 없을 터. 그러니 그가 앞으로 써야 하는 극은 그저 춘향의 이야기를 그대로 올리는 ‘춘향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어려운 사정은 연극 배우 신초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한복 디자이너인 이모 곁에서 모델 일을 하고, 때로는 베이비시터 알바를 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 연극배우로는 성공하지 못할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며 영화판에까지 기웃거린다는 스토리가 재미를 더한다.

정범종 작가는 전남 보성 출생으로 전남대 경영대를 졸업,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새연’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칼과 학’을 비롯해 ‘마스크 요정과 꼬마꽃벌’, ‘봄날의 새연’, ‘매사냥꾼’ 등을 출간했으며, 제주4·3평화문학상(소설)과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광주시립극단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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