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말이 보이게 하는 방법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6월 18일(수) 17:42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얼마 전 퇴근 길에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 길고양이가 사뿐사뿐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고양이는 매우 평온했다.

잠시 후 사단이 벌어졌다. 어떤 젊은 사람이 두 마리의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던 중 그 고양이와 길에서 조우하게 된 때문이다.

고양이는 반려견 두 마리를 발견한 순간 등과 털을 곧추 세운 채 적의를 드러내며 공격 태세를 갖췄고, 고양이는 날카로운 이를 반려견에게 보이며 척추를 활처럼 휘더니 금새 자신의 털을 세워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등을 활처럼 휘고 털을 곧추 세우며 적대감을 드러내는 고양이 같은 내담자를 자주 만난다.

그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 이웃으로부터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위로와 지지, 격려의 말은 삶의 메뉴에 없는 단어이다. 비난, 협박, 회유, 비교, 저주의 말이 그들의 삶에 스며 있다. 그러니 공감을 받아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얼마 전 중학교 3학년 남자 청소년이 상담을 하면서 자기 엄마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엄마 차를 타자마자 ‘내가 너같은 아이를 나서 이 꼴로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내가 그 청소년에게 ‘속상하고 화가 많이 나겠다’고 공감을 해줬다.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그 청소년은 ‘나도 엄마 밑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성인들이 모임에 가면 두 종류의 모임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모임은 모이자마자 상대를 칭찬하고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다른 종류의 모임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을 험담하고 서로의 단점을 캐면서 은근히 유머를 빌려 상대를 공격한다.

우리는 품격을 잃었다. 말의 품격을 잃었다.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상실해 가고 있다.

늦가을 동면을 준비하기 위해 독이 가득한 독사처럼 사람들을 향한 서슬퍼런 말들이 거리를 서성이고 있다.

지난 3년은 외계인의 침공을 받은 세월 같았다. 고위공직자들과 관료들의 생각과 논리는 해괴했다.

편가르기와 위협, 차별과 배제, 거짓말, 자만, 특권의식, 분노와 남탓, 위선으로 점철됐다. 자신과 생각이 약간만 다르면 반국가세력이라고 공격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 산업재해로 인한 희생자,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들의 인간성에 절망했다.

한줌의 재만도 못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박절하지 못한 아내를 지키기 위해 정당한 국민들의 요구에는 거부권 남용으로 응답했다.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걱정해 분출된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배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비과학적이라는 한 마디로 무찔렀다. 그러면서도 의료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수많은 갈등과 계량할 수 없는 피해에는 귀를 닫고 과학적 설명은 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하려면 이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배우자에게 수만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생일 한번 기억해주지 않고 선물 하나 주지 않는다면 상대는 사랑을 느낄 수 없다.

마약 중독자들은 소리가 보인다고 한다. 소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리를 본다고 한다. 과연 이런 사람들은 신인가? 외계인인가?

이제 들리는 말이 아니라 보이게 말하자. 말을 보이게 하려면 내 얘기를 멈추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무겁고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내가 낮아져야 한다.

자신의 말을 행동과 일치시켜야 한다. 타인의 심리적 경계와 양심의 자유를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내밀한 자기의 약접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약점이 드러날 경우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떠오른다. 어른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도 벌거벗지 않았다고 믿으려 했다. 사기꾼인 재봉사가 어리석은 사람이나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만 임금님의 옷을 보지 못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때 동심을 가진 어린 아이만 임금님의 벗은 모습을 그대로 얘기할 수 있었다. 남이 하는 말을 비판없이 그대로 읊어 대는 일, 무엇을 지키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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