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한국 오가며 독창적 아트 구축…생명 고찰

[남도예술인] 재독작가 정영창
1983년 독일 유학 후 유학 40년 넘게 머물며 작업
흑백 화면 구축…‘5·18항쟁’ 정신 상기하며 몰입
세계 응시 국내서 활동 반경 넓혀…자신감 회복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6월 18일(수) 18:49
그는 1983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줄곧 그곳에서 작업했지만 근래들어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카셀로 갔으나 그곳의 예술대학에서 뒤셀도르프로 이동했다. 그렇게 한데는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나 설치미술가 겸 화가 요셉 보이스 같은 세계적 예술가들이 그곳 예술대학 교수로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독일 거주 42년째를 맞은 그가 6개월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또 나머지 6개월은 한국에서 활동한다. 그의 고향은 목포지만 나주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활동 중이다.

독일과 한국 사이 13시간씩 걸려 오가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갈수록 시차 극복하는 일이 힘들어져서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재독작가 정영창씨다.

그의 삶에서 가장 위기는 5년 전으로 암 투병을 해야 했다. 이때 그는 혹여 죽을 지 모르기에 모든 것을 정리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한다.

‘검은하늘 그날-전일빌딩’
‘꽃 피고 지고’
당시 그는 국내에 들어와서 무언가 판을 벌이기 보다는 ‘작품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고, 몸이 회복된 2년 전부터 작업에 몰입하게 됐다. 상무관에 설치된 ‘검은 비’가 더이상 상무관에 자리하지 못하게 됐을 때 내림의식 같은 것을 했다. 그리고 나서 ‘검은 비’가 여기서 내려지는 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단지 세상 뜰 때까지 작가로서 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지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요즘, 그는 5·18민중항쟁 정신과 작업이 자주 연결되는 듯하다. 5·18 민중항쟁 제43주년 기념전시를 서울 아르떼숲에서 오월 관련작품들을 선보인데 이어 지난해 폴란드 그단스크와 비드고슈츠에서도 전시를 열었다. 전시는 그곳에서 5월 18일날 오픈돼 의미가 더해졌다는 후문이다.

특히 그와 5·18이 본격적으로 인연이 된 때는 2018년이다. 그때 광주 메이홀의 ‘5월 작가’로 선정되면서 5·18 작품전을 열었다. 이때가 그의 5·18 관련 전시로는 첫번째 자리였다. 물론 이때 전시하면서 상무관에 ‘검은 비’가 설치된 것이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전일빌딩에 설치된 ‘검은 하늘 그날’을 포함해 5·18항쟁 주요 공간에 작품 두점이 설치됐다. 그러나 ‘검은 비’가 철거됐지만 활동 범위를 넓혀가야 하는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광주에서 조금 더 작가의 작품을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5·18과는 전시가 연결되지 않았지만, 광주시립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대규모 전시를 연 바 있다. 이것이 6년 후 폴란드 전시로 이어진 셈이다.

‘이브라힘’
‘나’
그리고 5월 진행된 나주 정미소 작은미술관 전시장과 광주 예술이빽그라운드에서의 5·18기념 전시는 ‘쌀’을 집중 조명했다. ‘쌀’전을 마련한 이면에는 정미소라는 자체가 쌀과 관련이 있고, 쌀과 관련된 역사가 여럿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쌀은 동학농민혁명과 학생독립운동, 그리고 5월로 이어지니까 어떻게든 전시로 연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상무관을 나와 5·18기록관 기록물실에 있는 ‘검은 비’가 다시 상무관에 설치돼 선보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의 작업 1기는 1983년 도독 후부터 2008년 무렵까지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카셀에서 뒤셀도르프대학으로 전학 온 뒤 예술대학에 재학했고, 대학졸업 후인 1991년부터 본격적인 예술활동을 전개한다. 미술시장에 참여해 경험을 쌓았고, 1994년에 뒤셀도르프미술관에서 ‘생명’ 초대전이 성사돼 성황리 열렸다. 이어 1997년에는 도독 후 첫 귀국전이 아르코미술관 전신인 한국문예진흥원 전시실에서 열렸다. 2022년에는 뒤셀도르프미술관에서 다시 초대전이 열리는 행운도 찾아왔다. 이뿐이 아니다. 뮌스터미술관에서 ‘로댕과 동양에서 온 정영창’의 콜라보전이나 동독 예나(jena)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 등도 그가 잊지 못할 전시들이다. 모두 1기때 이뤄진 전시다.

제2기는 2009년부터 2020년까지였다. 이 시기는 흑백그림을 준비하고 있던 무렵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을 정리하고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던 무렵이다. 2005년에 오키나와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돼 흑백 화면이 구현됐다. 이렇게 해서 하겐(hagen)시 하이네 복합문화공간에서 처음 변화된 화면을 선보였다. 그는 작업과 관련해 또 다른 자신감을 찾을 수도 있었던 소중한 시기다. 그리고 캔버스 위에 먹물을 사용하는 등 기존 한국화와는 다른 조형으로 접근했다.

‘조용한 소란’
‘윤상원’
제3기는 2020년 이후로 분류해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그가 암으로 인해 투병하던 시기다. 몸이 아프다 보니 모든 전시가 ‘목숨’에 관한 주제를 다루게 됐다. 아르떼숲에서 광주 83주년 기념전으로 ‘김재규를 상정하다’ 주제전도 이 시기에 의미를 짚어볼 수 있는 전시로 꼽힌다.

이처럼 작가로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축적해온 그에게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지었다.

“제가 살아온 자체가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건을 목격 하면서 작업을 해 왔습니다. 제게 가장 걸맞은 것은 살아온 시대를 기억하고, 기록한 작가라는 점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해 인간 생명을 성찰해 나갈 것입니다. 모든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대인 만큼 장소는 중요하지 않죠. ‘무엇을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믿음입니다. 바람부는 대로 순차적으로 흘러가고 싶을 뿐입니다. 특정한 것을 이룬다기보다는 현실을 느껴가며 작업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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