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멈춘 광주, 책 쓰는 도시를 묻다

시의회, 한강 기념사업 예산 10억5000만원 삭감
"일회성·상징성 기획" 급제동…시, 대안사업 고민

장승기 기자 sky@gwangnam.co.kr
2025년 06월 29일(일) 17:57
광주시청 잔디광장에서 열린 한강 작가 노벨문학샹 수상기념 조형물 점등식에 참석한 강기정 광주시장과 시민들이 ‘소년이 온다’ 책 조형물을 보고 있다.
광주시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고 독서 문화를 활성화하는 공간 조성을 위해 추진한 ‘북카페 사업’이 결국 무산됐다.

시의회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다. 시의회는 천편일률적인 ‘한강의 도시’로 이미지를 소비하기 보다는 깊은 고민과 차별화된 전략을 요구했다.

29일 광주시와 시의회 등에 따르면 한강 작가 생가 인근에 북카페를 조성하는 ‘골목길 문화사랑방 조성사업’ 예산이 의회 심의에서 전액 삭감됐다.

광주시는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유년기를 보낸 집터를 매입해 북카페로 꾸미는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착착 진행될 것 같았던 북카페 조성 사업은 첫 단추부터 꼬였다.

한강 작가가 살았던 집터의 땅 주인이 광주시의 매입 제안을 거부한 것이다. 이 땅에는 현재 2층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에 광주시는 중흥동 인근 부지를 매입키로 하고 나대지를 사들여 설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강 작가가 ‘작품의 이름을 쓰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광주시는 저작권료를 주더라도 ‘소년이 온다’는 이름을 쓰려고 했으나 아쉽게 무산된 것이다.

광주시는 자신의 이름을 딴 기념관 건립에 부정적인 한강 작가의 입장을 감안, 부친인 한승원 작가에게 의견을 물어 대신 인근 부지에 북카페를 추진했다.

올 하반기까지 4층 규모(연면적 238㎡)로 건물을 올려 카페와 세미나실 등을 구축, 북카페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의회가 북카페를 짓기 위한 공사비 10억5000만원 전액을 삭감했다.

시의회는 사업의 실효성과 차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명노 시의원은 지난 26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광주시 추가경정예산안 심의에서 한강 작가 생가 인근 북카페 조성 사업에 대한 예산 타당성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북카페 사업이 “노벨상 수상에 편승하는 일회성·상징성 중심의 기획”이라며 “전국 여러 지자체가 천편일률적으로 ‘한강의 도시’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급급한 상황 속에서 광주는 보다 깊은 고민과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노벨문학상 수상은 단지 책을 많이 읽은 도시라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이 쓰여진 문화 기반에서 비롯된다”며 “광주는 단순히 독서를 장려하는 수준을 넘어, 시민이 저자가 되고 영감과 창작의 생태계를 갖춘 도시, 책을 쓰기 위해 모이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대안으로 시민 집필 컨설팅 프로그램, 출판 전문 교육, ‘한강 백일장(가칭)’ 등 전국·국제 단위 문학 창작 대회 개최, 우수 작품의 출판 지원 등 광주시가 실질적 지원자로 나서는 전략을 제시했다.

또 “광주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지하실에 숨어 전단과 기사를 제작하며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도시”라며 “북카페보다 당시의 출판·언론 운동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의미로 출판 기념관이나 출판 박물관 같은 독창적 콘텐츠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광주시 관계자는 “예산이 삭감된 데 대해 아쉽다”며 “광주가 책 읽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매입 부지를 보다 더 실효성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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