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로 만든 붓’ 작업…입체적 화면 구현

‘사실에서 추상까지’ 화업 50년 김혁정 작가
15일까지 갤러리 생각상자서 35점 선보여
"무엇과도 타협않고 내 길…조형관에 집중"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7월 02일(수) 17:28
‘맨드라미’ 연작들 옆에서 포즈를 취한 김혁정 화가
“살아가는 동안 모든 자취가 별에 닿을 수 있고, 살아있는 모든 것이 결국 별로 간다”던 작가는 한때 화폭에 무수한 점을 찍어 광활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작업을 펼쳐왔다. 훗날 그의 화폭 중 상당부분이 점 같은 물상들이 무수히 반복돼 사실적이든, 추상적이든 그만의 화폭을 구현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 점이 별들을 형상화하는데 쓰였지만 지금은 꽃 등으로 분화돼 계절과 상황에 맞는 화면이 구현됐다. 젊은 날 전남대 학부와 석사를 마친 뒤 프랑스로 떠나 파리제1대학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것이 계기가 돼 프랑스에서만 10여년을 머무르다 국내로 복귀해 서울을 거쳐 여수 한영대 교수로 부임하며 남도땅으로 돌아왔다. 사실 가족들의 투병이 아니었다면 돌아오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래도 국내에 안착을 잘한 경우에 속한다. 그는 대학에 재직할 무렵 늘 창작에의 갈증을 달래지 못하고 정년퇴임 5년을 앞두고 대학을 나와 전업화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가 거의 1년에 한차례 이상씩 꾸준하게 전시를 열고 있는 것이 그것을 잘 뒷받침하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 퍼즐을 관람객들이 봐 주는 것이라고 밝힌 주인공은 화업 50년차 김혁정 화가(71)다.

1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작품을 꼭 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 뒤 작품을 하나 하나 설명하던 중 갑작스럽게 붓을 보여주며 자신이 만든 붓이라고 소개한다. 별 다를 것이 없어보였지만 ‘빗(방비)자루로 만든 붓’이라고 한다. 벌써 35자루나 되는데 빗자루 외에도 대나무, 나무, 젓가락, 새의 깃털 등으로 만든 다양한 붓들을 가지고 작업을 펼치고 있다.

전시 전경
‘꽃’ 연작들 옆에서 포즈를 취한 김혁정 화가
빗자루로 만든 붓으로 작업 시연을 해 보이는 작가
빗자루로 만든 붓으로 작업 시연을 해 보이는 작가
그가 이처럼 붓을 생각해낸데는 기존 붓으로는 자신만의 그림을 작업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붓 대신 자신만의 그림을 위해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붓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계기가 됐다.

붓도 붓이었지만 사계 작품 중 봄과 여름, 가을은 한데 벽면에 배치됐다. 그러나 겨울만 떨어뜨려 배치했다. 처음에는 벽이 좁아서 인가 했는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접속사 하나 때문에 겨울을 따로 다른 벽면에 걸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구사한 언어 하나일지라도 의미부여를 해내고 그것을 실현한다. 전시공간에서는 접속사 하나 버려지지 않고 큐레이팅에 활용된다는 점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그의 화폭에는 산과 맨드라미, 꽃, 동백 등이 등장한다. 어찌보면 사실화 같지만 작품으로부터 한발짝만 뒤로 물러서면 입체적 그림으로 보인다. 그리고 각도를 달리하거나 빛을 달리해도 작품의 풍기는 이미지가 달라진다. 가령 동백꽃을 보고서 달려있는 꽃잎 및 떨어진 꽃잎들과 교감을 통해 생과 사를 넘어 인간사의 윤회와 연결짓고 그만의 해석이 더해져 화폭에 투영된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그만의 개성이 뚜렷하게 스며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사실과 추상을 넘나들며 1년 전 전시 이후 새롭게 70여점을 작업했다. 그중 ‘사계’를 비롯해 ‘겨울나무로부터’, ‘세월’, ‘꽃’ 등 35점을 엄선해 출품했다.

화업 50년차에 접어든 김혁정 화가가 15일까지 갤러리 생각상자에서 전시를 연다. 사진은 ‘빗자루 붓’으로 작업 시연을 해 보이는 작가.
그가 빗자루를 비롯해 대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붓
<>출품작 중 ‘겨울나무로부터’는 단숨에 그려낸 것으로 충효동 소재 왕버들 다섯그루를 보고 화폭에 담은 것이다. 아마 화폭에 담은 왕버들은 묵빛으로 우울하거나 쓸쓸하기보다는 무언가 충만한 에너지의 분출과 그윽하고 차분해지는 정조가 녹아있는 듯하다.

아울러 드로잉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도 잊지 않았다. 내적 정서를 통해 눈으로 들어온 게 있을 것이고, 그것이 다시 가슴으로 들어와 손끝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드로잉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는 줄곧 내 길을 걸어왔다. 내가 사유화해 꽃도, 반딧불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는 사실에서 추상까지, 추상에서 사실까지 무언가를 뽑아서 보여줘야 하는 조형관에 집중했다”며 “나는 그림을 그려오면서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작품들은 내가 사유를 통해 마무리한 꽃과 반딧불인데 이것들을 보여주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중간에 암 투병하느라 작업을 하지 못하던 때를 빼면 딴청이나 해찰을 한 적이 없다. 다만 그에게 대문 밖으로 나서면 여행이라는 생각도 이 무렵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울에서 ‘6년만의 외출’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었고, 지스트 오룡관 초대전 이후 호랑가시나무창작소 아트폴리곤 전시, 그리고 이번 생각상자 전시에 이어 내년에 국윤미술관에서 전시를 열 계획이다.

전시는 ‘겨울 꽃 여름 눈’이라는 타이틀로 지난 6월 19일 개막, 오는 15일까지 갤러리 생각상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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