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연결된 삶…새로운 미래 ‘점유’ 꿈꾸다

전남도립미술관 국제전 9월 3일까지 20여 작품 선봬
한국·우크라·인니 등 9명 참여…‘공동체 복원’ 갈구
억압된 존재 회복 등 표현…12일 이산 작가 퍼포먼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7월 09일(수) 18:14
인도네시아 출신 에코 누그로호 작 ‘Protester With New Issue’(2016)
미술관의 의도나 큐레이터의 암묵적 담론에 지배받지 않고 관람객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동선을 잡아 돌아다니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이는 별도의 섹션을 만들지 않아서 가능해졌다. 발길이 닿는 대로 작품을 보면 그뿐이다. 감상자 입장에서 다분히 의도된 동선의 압박 대신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아다니며 관람하면 되는 것이다.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이 지난 6월 10일 개막, 오는 9월 3일까지 전시실 1~6실에서 각기 다른 위기와 억압, 상실의 조건 속 ‘점유’를 존재의 회복과 장소의 재구성으로 풀어내는 등 현대사회의 ‘점유하는 광장’을 키워드 아래 ‘Occupy: 우리는 연결되고, 점유한다’는 주제로 한 국제전시가 그것.

연결과 연대의 방식에 대한 탐구에 중심을 두고 있는 이번 전시는 인권과 존엄성 실현을 위한 공동체적 연대의 자세를 모색하면서 공동체 실천의 현장을 재현하거나, 집단 기억의 장소를 소환하고, 시간의 흔적을 추적하는 등 예술적 개입을 통해 점유의 새로운 의미 조명에 나선다. 출품작은 전남 출신 작가들이 포함된 4명의 국내 작가들과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등 해외작가들을 망라한 총 9명의 회화, 미디어, 설치 등 20점이다.

전세계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삶이 넘쳐나고 있다. 작가들은 이를테면 한국의 비상계엄 전후의 민주주의 회복력이나 새로운 민주정부 출범 등 근래 전지구촌 국가 중 위기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나라들의 상황을 조망했다. 한국 작가들은 현재의 현실 속에서 지역성과 장소성, 공동체의 감각을 예술로 다시 사유하며, 점유를 흔들리는 삶과 기억을 감각적으로 회복하는 실천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 오픈 그룹(Open Group) 작 ‘Repeat after Me Ⅱ’(2022-2024)
강수지 이하영 작 ‘민주주의 덕질하기’(2025)
홍콩 출신 아이작 총 와이 작 ‘Failling Reversely’(2021-2024)
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며 수많은 시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이번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은 전선에 참전 중인 예술가로, 생존과 저항의 최전선에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작품은 점유를 존재 자체를 지켜내기 위한 절박한 기록으로 보여준다.

이외에 튀르키예는 정치적 불안과 표현의 제약이 지속되는 가운데 작가는 침묵당한 몸과 공간을 소환하며 점유를 억압된 존재의 회복과 저항의 제스처로 표현하고 있고, 홍콩은 국가보안법 이후 공공성과 발언의 공간이 축소된 가운데 작가는 지워진 장소와 기억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며 점유를 사라진 연대와 시민 감각의 복원 행위로 전환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그 불안의 중심에 다시 모이고, 기억을 나누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광장’의 감각을 탐구한다.

전시는 현대사회에서 ‘광장’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 공동체가 모이고 연대하는 과정을 하나의 서사로 풀어낸다. ‘연결되고, 점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이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는 세 가지 축을 설정한다. 세 가지 축으로는 첫째 ‘개인은 과거의 사건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둘째 ‘현재 우리는 어떻게 연대하고 있는가’, 셋째 ‘변화의 미래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등이다. 이 전시는 세 구성 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정된 구조로 나뉘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열린 개념의 장을 제시한다.

권승찬 작 ‘무기력한 풍경’(2025)
이세현 작 ‘에피소드-국민이 주인이다’(2025)
첫번째 ‘점유’에는 사회·정치적 현실의 복잡성과 긴박함을 참여형 설치 작업으로 선보이는 우크라이나 출신 오픈 그룹(Open Group), 잊히거나 가려진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시각화한 튀르키예 출신 에르칸 오즈겐(Erkan Ozgen), 국가보도연맹 사건을 중심으로 기억-공간-인물 간 관계를 아카이빙한 전남 장흥 출신 권승찬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다.

두번째 ‘점유’에는 공동체와 참여적 예술 실천을 추구하는 대형 벽화 작품을 선보이는 인도네시아 출신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사진의 시간성과 현실성을 기반으로 사건의 흔적을 추적하는 전남 곡성 출신 이세현, 청년 세대로서 기억과 저항의 맥락을 되새기며 동시대 사회의 감각을 시각화하는 여성 작가 그룹 강수지·이하영(2인 그룹)의 작업이 포함됐다.

세번째 ‘점유’에는 사람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대형 이불 작품으로 광장을 형상화한 이산(본명 정문성), 인간을 도시적 생명체로 바라보며 동시대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포착한 중국 출신 진양핑(Jin Yangping), 몸과 움직임을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존재의 관계성을 영상 작업으로 풀어낸 홍콩 출신 아이작 총 와이(Isaac Chong Wai)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지호 관장은 “이번 기획전이 동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적 시도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향한 다양한 연대의 양상과 그 미학적 가능성을 조명한다”면서 “전시가 관람객 여러분께 동시대 예술의 흐름과 가치,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금 성찰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이산’ 작가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가 12일 오후 2시, 4시 미술관 1전시실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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