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 문학잡지는 문학관 아카이브의 핵심

한경숙 시인 (오월문예연구소 연구원)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9월 11일(목) 17:30
한경숙 시인 (오월문예연구소 연구원)
문학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건물을 세워 전시와 행사를 치르는 데 있지 않다. 문학관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문학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대의 목소리를 이어가는 데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자산 중 하나가 바로 문학잡지다. 전국의 문학잡지만 차곡차곡 모아도 그것은 곧 하나의 거대한 아카이브가 된다. 잡지는 특정 시기의 문학적 감수성과 사회적 흐름,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생생히 보여 주는 귀중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관이 차별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문학잡지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문학잡지를 발간하고 유지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지역 잡지는 몇몇 문인들의 열정과 헌신에 의지해 운영된다. 원고를 청탁하고, 편집과 교정을 거쳐 인쇄와 배포까지 직접 뛰어다니며 겨우 명맥을 이어간다. 현실적으로 구독 기반은 갈수록 약해지고, 인쇄비와 유통비는 큰 부담이 된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잡지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문학인들은 잡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역 문학의 기록이며, 후대에 전해야 할 문화적 유산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문학잡지는 단순한 정기간행물이 아니다. 한 지역의 문학을 증언하고, 문학 공동체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뿌리다. 지금 지역에서 발간되는 잡지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지 못한다면, 수십 년 뒤 우리는 지역 문학의 흐름을 되짚을 자료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학관은 ‘전국 문학잡지 아카이브’를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잡지를 망라해 수집·정리하고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한다면, 연구자는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문학을 만나는 또 다른 통로가 될 것이다. 만약 광주문학관이 이 일을 선도한다면, 다른 지역 문학관과 확실히 차별화된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카이브 구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문학잡지가 지속적으로 발간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잡지를 만드는 문인들의 열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원고료와 제작비, 배포망 구축은 개인의 희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작가들은 잡지가 더 성장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잡지가 곧 지역 문학의 얼굴이자,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지역민에게 문학을 소개하는 가장 친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 문학잡지 운영 목적에 맞춘 공적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생계 지원이 아니라, 지역 문학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다음 세대를 키우는 토양을 마련하는 일이다.

문학관은 문학잡지를 단순한 수집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산실로 인식해야 한다. 잡지를 모으고 기록하는 일은 과거를 정리하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오늘의 잡지가 내일의 문학사를 만든다. 전국의 문학관이 제각각 흩어진 잡지를 수집해 체계화한다면, 지역 문학 연구의 깊이는 훨씬 더 풍부해질 것이다. 특히 광주문학관이 이러한 작업을 주도한다면, 광주만의 문학적 자산을 드러내는 동시에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정체성에도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이다. 행정과 문학계가 힘을 모아 문학잡지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문학관이 주체가 되어 전국 문학잡지를 수집·보존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창작과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병행한다면 문학관은 살아 있는 문학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 지역 문학잡지를 지키고 키우는 일은 문학인만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곧 지역 문화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자, 후대에 건네줄 값진 유산을 다듬는 일이다. 전국의 문학잡지를 아카이브화하고, 지역 문학잡지의 지속적 발간을 지원하는 길만이 문학관을 진정한 문화 거점으로 세울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첫걸음을 내 딛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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