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젓가락으로 배우는 삶의 지혜

김명화 교육학박사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9월 24일(수) 17:56
김명화 교육학박사
‘숨막히게 더운 여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참아내고 보니 어느새 가을이더라.’ 신상우 작곡가의 ‘인생’ 의 한 부분의 노래가 이번 계절과 이토록 맞아 떨어질까?

그렇게 힘들었던 여름도 어느덧 밀려오는 가을 앞에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선 것 같다.

고향 집에 들렀다. 지척에 사는 조카댁이 아이들과 방문을 해서 점심 식사를 같이하게 됐다. 4세 된 손녀가 젓가락 사용법을 배우고 있는 시기인가보다.

조카댁은 아이에게 젓가락 사용방법을 다시 한번 알려준다. 아이는 젓가락으로 콩 잡기에 온 힘을 기울인다. 그 상황을 옆에서 조부모가 안타까워하면서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90년대 히트곡인 DJ DOC의 ‘DOC와 춤을’이란 노래에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라는 가사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것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어른에 대한 반항에 대한 노래로 선풍적인 인기몰이 했다.

“젓가락 그게 뭐라구” 하지만, 젓가락을 잘 잡고 음식을 옮긴다는 것은, 전조작기 시기의 아이들에게 소 근육 발달, 두뇌 활동에 긍정적인 효과를 줘 유아교육현장에서도 의도적으로 젓가락 사용법과 젓가락으로 물건 옮기기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한편, 젓가락은 동서양의 문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나이프와 포크로 음식을 자르고 찌르는 동안, 동양에서는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서로 나눠 먹는다.

젓가락 문화에는 공동체와 배려가 담겨 있다. 한쪽만 힘을 쓰면 음식은 제대로 집히지 않듯, 개인만 강하면 공동체는 흐트러진다.

식탁에서 젓가락을 나누며 음식을 집어주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함의 즐거움을 배운다.

젓가락의 구조에도 삶의 철학이 녹아 있다. 끝은 가늘고 손잡이는 두꺼워, 소중한 음식을 섬세히 다루면서도 손은 단단히 지탱해야 한다.

나무젓가락은 자연에서 와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금속젓가락은 단단함 속에서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러한 특성은 겸손과 인내, 적응과 조화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역사 속 젓가락 이야기도 흥미롭다. 중국에서는 이미 3000년 전부터 젓가락을 사용했으며, 한국의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젓가락과 숟가락으로 식사하는 장면이 남아 있다.

나라별 젓가락의 모양과 재료가 다른 이유는 음식 문화와 밀접하다.

한국의 긴 금속젓가락은 불고기와 같은 볶음 요리를, 일본의 짧은 나무젓가락은 섬세한 초밥을 먹기에 적합하다.

그런데 금속젓가락은 더 감각적이라 두뇌 자극에도 더 효과를 준다고 한다. 동양의 단순한 도구 속에도 문화와 지혜가 녹아 있는 것이다.

최근 청주에서 공예비엔날레가 있어 주말을 이용해 방문했다. 공모전 전시를 보는데 보자기×젓가락 연결 짓기 공모에서 정혁진 작가의 ‘널을 딛고, 솟다’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

젓가락과 젓가락을 놓는 받침대는 널을 뛰는 남녀의 모습이다. 널을 뛴다는 것은 상대방과 협력이다. 그리고 서로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작품 제목처럼 협력과 배려가 조화된 작품이었다. 젓가락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며 전시장을 한 바퀴를 도는데 ‘1m 천당과 지옥의 젓가락’을 발견했다.

젓가락이 너무 길어 음식을 먹을 때 자신을 먹을 수 없으며 타인에게 음식을 먹여줘야 한다. 1m 젓가락을 통해 배려와 협력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오늘도 식탁 위 젓가락을 들며 생각한다.

길고 가느다란 두 젓가락이 힘을 합쳐 작은 음식을 들어 올리듯,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며 삶의 균형을 맞춘다.

젓가락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는 결국 나와 타인, 개인과 공동체, 자연과 문화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작은 도구 하나에서 이렇게 깊은 사유와 배려를 배우다니, 식탁 위 일상도 결코 작지 않음을 깨닫는다.

젓가락을 들며 음식을 나누는 순간, 삶은 그저 먹고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오늘의 젓가락 한 쌍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작은 철학이자라는 생각이 든다.

식탁에서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잘 먹는 것은 아니다.

포크를 쓰던, 숟가락을 쓰던 손으로 먹던 음식을 먹는 방법은 문화권, 개인에 따른 선택이지만 젓가락은 배우면 편리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도구 젓가락을 통해 배려와 균형의 삶의 지혜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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