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발레단 제41회 정기공연 ‘해적(Le Corsaire)’ 리뷰]

한국 발레 승급시킨 안무가의 현명한 선택
<김경애(춤평론가)>

광남일보 @gwangnam.co.kr
2025년 09월 30일(화) 14:26
광주시립발레단(단장 박경숙) 제41회 정기공연으로 국내에서 잘 공연되지 않는 ‘해적(Le Corsaire)’을 올렸다.(9월 26~27일, 광주예술의전당)

‘해적’은 우리나라에서 주요 장면을 갈라로 올려져 많이 본 듯하지만 전막은 수십년전 국립발레단 공연 이후 국내 제작은 드문 일이다. 전막이 잘 공연되지 않는 이유는 엄두 내기 힘든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아돌프 아당 음악에 마리우스 프티파의 원전을 기준으로 해도 스토리 텔링이 복잡하고 곁가지가 많아 안무가 용이하지 않으며 무대 제반 요건에 무용수의 고난도의 정교한 기교를 요구한다. 또 현대에 들어서서는 해적, 노예, 여성, 이슬람문화 등 예민한 소재 자체가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번 제작은 총연출 및 예술감독 박경숙에 마린스키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활동을 했고 현재 마린스키발레 프리모르스키극장의 예술감독인 엘다르 알리에브(Eldar Aliev) 안무로 이루어졌다. 한마디로 알리에브의 안무는 정통 오리지널 마린스키의 감성이지만 간결한 스토리에 무용수의 춤 위주로 풍성하게 펼쳤다는 점이다. 광주시립발레단이 가지고 있는 인적 재원을 충분히 연구해 그 현실적인 것을 끌어올리는, 거기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여진다. 판토마임의 설명적 극적 전개의 요소를 없앴지만 환상적인 발레의 낭만성인 기본을 가지고 갔다. 해적, 노예 등 논쟁적 주제를 ‘사랑’으로 표상화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광주시립발레단 스태프진 전체, 특히 무용수들이 급성장했으리라 예견할 수 있다.

19세기 고전발레의 대표작 중의 하나 바이런의 서사시 ‘해적’은 납치된 여인을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하는 해적 콘라드와 그의 동료들이 펼치는 모험과 사랑 이야기이다. 각 캐릭터들의 개성이 중요하고 드라마틱한 전개에는 화려한 의상과 장치 속에 무용수들의 정교한 움직임이 전부를 차지한다. 박승유 지휘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도 이번 제작을 빛냈다.

안무자 엘다르 알리에브는 과감히 정리를 하면서도 프랑스를 거쳐 러시아에서 마리우스 프티파에 의해 회생된 이 레퍼토리의 주요 춤인 궐나라의 솔로 바리에이션, 하렘 노예들의 ‘오달리스크 파 드 트루아’ 등은 그대로 살렸다. 콘라드와 메도라의 사랑을 드라마의 중심에 놓고 2막으로 압축해 전개를 빠르게 했다. 작품의 특징인 다채로운 춤을 살려 콘라드와 메도라의 파드되의 묘기를 보여준다.

의상 및 장치 디자이너 페트로 오쿠네브는 동양(이슬람문화)의 동화가 가진 다채로움과 이국적인 매력을 담아냈다. 페르시아로 연상되는 고대 중동의 미학으로 호화로움과 낭만을 반영,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환상이 펼쳐진다. 2막은 그 화려함이 더 상승됐다.

안무가 엘다르 알리에브는 이번 광주시립발레단의 버전을 ‘제3의 길’로 표현했다. 마린스키 버전은 원작에 충실하며 낭만주의 시대의 팬터마임 발레가 얼마나 즐겁고 매혹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교를 부각했고, 아메리칸발레시어터는(ABT)는 의도적으로 클래식을 유쾌하게 비틀어낸 작품으로 과장된 극적 요소로 가득찬 흥미진진한 이야기라고 요약한다. ‘해적’이라는 레퍼토리가 고풍스럽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고전임을 놓치지 않은 안무자는 현대 관객들이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보다 응집력있고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로 단순화된 속에 고난도의 기량을 즐긴다는 판단 아래 프티파의 안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부분들을 세심히 보존하면서 다른 부분을 새롭게 발전시켰다. 그는 각 캐릭터에 대해서도 성격을 재해석했다. 콘라드는 강인하고 활기차며 에너제틱한 인물로 그려진다.

안무가의 이 같은 관점을 무대에서 구사하는 무용수들이 결국은 발레의 매력의 중심에 있다. 광주시립발레단의 무용수들은 격조와 감성 표현을 중시하며 호소력 있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영상으로 처리해 폭풍우를 헤치며 해적선이 지중해 동쪽 해안을 향해 항해하는 장면 프롤로그로 시작해 총 2막의 여섯 개의 큰 장면이다. 메도라 (강은혜, 강민지), 콘라드 (박관우, 박범수) 권나라 (공유민, 이고은) 랑켄뎀 (이상규, 하승수) 세이드 파샤(보그단 필로피뉴) 등이 열연한다. 주역진은 발레의 교과서적인 기량들을 차원있게 구사한다.

시장광장에서 세이드 파샤가 자신의 하렘을 위해 여인들을 사려고 도착한다. 제1장에서 생기넘치는 미녀 궐나라의 춤이 사로잡고, 메도라의 고혹적인 자태의 춤이 부각된다. 세이드 파샤의 캐틱터 댄스는 유모어가 돋보였고, 노예상인 랑켄뎀의 묘기는 출중했다. 콘라드 꿈의 장면은 프티파 작품의 전형적인 발레블랑(백색발레 군무)인데 안무자의 채색은 발레블랑을 백색으로 독립시켰다기보다는 작품의 전체적인 톤으로 수렴되는 핑크 혹은 살구빛의 감성으로 이어갔다. 꽃밭은 표현하는 여성군무의 화환을 든 춤 등이 마린스키의 동화적 감수성이다.

2막은 세이드 파샤의 궁전(하렘)에서의 오달리스크 3인무, 메도라와 콘라드, 궐나라의 기지 발휘의 춤, 하렘의 여인들의 춤, 캐릭터 솔리스트 이인무, 해적의 솔리스트, 해적들의 군무 등 화려한 춤으로 가득찬다. 스토리를 마임이 아닌 춤으로 전개한다. 해적들은 대장 콘라드와 그의 사랑하는 여인 메도라를 맞이하며 무사 귀환을 축하한다. 자유로운 바람에 돛을 펼친 채 연인들은 행복을 향해 항해하는 영상으로 끝을 맺는다.

무대 이동민, 조명 이철희, 영상 김혁, 음향감독 황성훈, 조안무 알렉산드라 아칸젤스카야, 부예술감독 조가영, 지도위원 박상철 등이 힘을 합해 완성도를 높였다. 무용수의 기량을 살리며 결국은 한국 발레를 승급시킨 안무가의 현명한 선택이 성공의 핵심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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