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전남의 보·물·섬’]<5>여수 연도 보물이 잠든 섬…빛으로 길을 비추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
| 2025년 10월 23일(목) 1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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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룡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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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도 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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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팽이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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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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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역포마을 |
△솔개가 나는 섬, 연도의 이름 유래
여수 금오열도의 최남단, 바다 끝자락에 떠 있는 섬. 중앙의 시루봉이 마치 솔개가 날개를 활짝 편 듯하다 해 ‘소리섬’ 혹은 ‘소리도’라 불렸다. 이후 한자로 ‘솔개 연(鳶)’ 자를 써서 연도(鳶島)라 표기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정겹게 ‘소리섬’이라 부른다.
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국동항)에서 출발한 정기여객선이 하루 두 차례 운항하며, 약 1시간 40분~2시간이면 도착한다. 이 항로는 여수~금오도~안도~연도로 이어지는 금오열도의 주요 생활선이자 관광길이다. 섬의 면적은 6.93㎢, 해안선은 약 35.6㎞에 달하며, 400여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다.
섬 중앙의 필봉산 증봉(231m)을 중심으로 완만한 구릉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이 땅에서 쌀과 콩, 고구마를 재배하고, 바다에서는 계절마다 다른 어종을 잡는다.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문어, 가을에는 삼치와 갈치, 겨울에는 도미와 광어가 주어지는 풍요로운 어장이다. 특히 돌김과 돌미역, 천초 등 해조류는 품질이 뛰어나 연도의 대표 특산물로 손꼽힌다.
△기암괴석과 동굴이 만든 천혜의 절경
연도의 해안은 대부분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남쪽 해안에는 깎아지른 듯한 해식애가 장관을 이룬다. 북동쪽의 역포만을 비롯해 중앙부와 남쪽에는 크고 작은 만이 형성돼 있고, 모경말·배미말·대룡단 등으로 불리는 해식애의 돌출부가 곳곳에 이어진다. 해안을 따라가다 보면 바람과 파도가 수백 년 동안 빚어낸 동굴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솔팽이굴을 비롯해 해상굴, 만장굴, 이심난굴, 용문굴, 십자굴, 정월래굴, 쌍굴 등 이름조차 신비로운 동굴들은 탐험객과 사진가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섬 주변에는 작도(까치섬), 알마도(안마도), 삿갓여, 검등여, 소룡여. 대룡여, 거북여, 고래여 등 크고 작은 무인도들이 흩어져 있다. 이들은 파도와 햇살을 받아 저마다의 형태로 빛나며, 연도의 풍경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다. 오염원이 거의 없는 청정한 바다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감성돔·볼락·도다리 등이 사시사철 낚이는 여수권 대표 바다낚시 명소로 꼽힌다. 낚시꾼들은 “연도 바다는 늘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연도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바다낚시의 성지이자, 천혜의 절경이 살아 숨 쉬는 섬이다.
△세 개의 보물이 전해지는 섬, 연도의 전설
연도에는 오래전부터 신비로운 ‘보물 이야기’가 세 가지 전해 내려온다.
첫 번째는 소리도 등대 부근 솔팽이굴의 황금 전설이다. 162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이 일본에서 황금을 싣고 인도네시아 식민지로 가던 중 해적선에 쫓기자 솔팽이굴에 급하게 황금을 숨겨 놓고 본국으로 돌아가 황금의 위치를 성경책에 지도로 그려뒀다고 전한다. 350년의 세월이 흐른 1972년 네덜란드계 미군이 한국 근무를 하게 됐다. 어느 날 그 미군이 카투사였던 연도 출신 손연수씨에게 지도를 꺼내놓고 황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 손씨는 그 섬이 자신의 고향인 연도라 생각하고 제대 후 동굴을 탐사했으나 끝내 황금은 찾지 못했다.
두 번째는 호족 박영규의 보물 설화다. 고려 건국의 공신으로 알려진 박영규가 당시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소리도에 근거지를 두었는데, 그가 막대한 금을 숨겨두었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진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금광 전설이다. 해방 직전, 일본인이 인근 금광에서 캐낸 금을 본국으로 실어가려다 해방을 맞으며 돌아가지 못하고, 연도 어딘가의 동굴 속에 숨겼다는 것이다.
이렇듯 연도에는 세 가지의 보물 전설이 전해지고, 그 외에도 바다와 마을, 사람들의 삶이 녹아든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주민들은 이를 ‘연도 열두 가지 이야기’로 엮어 전하며,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화집처럼 살아 숨 쉰다.
바다와 바람, 그리고 세월이 깃든 이야기들이 지금도 연도의 해안 곳곳을 감싸며, 섬을 찾는 이들에게 신비와 낭만을 동시에 선사한다.
△바다를 지킨 불빛, 소리도 등대의 100년
1910년 10월 4일 남해의 밤바다에 처음 불을 밝힌 소리도 등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쉼 없이 바다를 지켜왔다. 먼바다에서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선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불빛이자, 여수와 광양항으로 드나드는 선박뿐 아니라 서해안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항로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등탑은 육각형 콘트리트 구조물로 등대 내부는 나선형의 철재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등답 높이는 9.2m에 불과하지만,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82m의 고지대에 자리해 있어 약 40㎞ 밖에서도 불빛이 보인다. 이 작은 등대가 남해의 수많은 선박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폭풍과 안개 속에서도 안전한 귀항을 도와왔다.
한 세기를 넘긴 지금도 소리도 등대는 남해의 바다를 묵묵히 비추며, 연도 주민들에게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첫 불빛’으로, 항해자들에게는 ‘남해의 수호등’으로 기억되고 있다.
△기억 속의 아픔, 시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
1995년 7월 23일 태풍 ‘페이’가 거세게 몰아치던 날. 소리도 등대 서쪽 약 1.5㎞ 해상에서 키프로스 선적 14만4000t급 유조선 시프린스호가 좌초되며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 당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 원유 130만 배럴을 공급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기관실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기름이 바다로 흘러나왔다.
이 사고는 초기 방제 실패에 기상악화가 더해져 남해 바다에 대형 재앙을 불러왔다. 오염 범위는 전남 고흥과 경남 통영, 거제는 물론 부산 해운대 앞바다까지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연도 앞바다는 피해의 중심이었다. 바다는 시커멓게 물들었고, 어민들은 평생의 생계터전을 잃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바다는 상처를 덮고 다시 푸른빛을 되찾았다. 하지만 연도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들에게 소리도 앞바다는 단순한 어장이 아니라 고통과 회복,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함께 품은 바다다.
△‘가고 싶은 섬 연도’로의 변신
연도는 지난 2022년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주민이 주도하는 지속 가능한 섬 관광지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일도, 놀이도, 소리도’라는 워케이션 아일랜드 콘셉트 아래, 일과 휴식, 문화가 공존하는 섬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이 추진 중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역포마을 당산공원 조성, 마을 경관 개선 및 스마트 쉼터 설치, 역포분교 리모델링, 손상기 화백 생가와 연계한 마을길 벽화 조성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똑소리학교’ 운영, 공동체 법인 설립, 홍보·마케팅 역량 강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주민이 있다. 행정이 아닌 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섬, 외부 관광객보다 먼저 섬사람의 일상과 삶이 존중되는 섬으로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도는 이제 ‘가고 싶은 섬’을 넘어 ‘머물고 싶은 섬, 살아보고 싶은 섬’으로 변신 중이다.
연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자연이 숨 쉬는 ‘살아 있는 섬’이다. 파도와 바람,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함께 빚어낸 이 섬은 지금, 천천히 그러나 단단히 지속 가능한 미래로 항해하고 있다.
박영채 전남도 해양수산국장은 “연도는 전남의 섬 가운데에서도 자연의 원형이 가장 온전히 남아 있는 곳으로, 주민의 삶과 생태, 관광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주민이 주도하는 섬 가꾸기를 통해 일과 쉼이 어우러지는 워케이션형 섬 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holbul@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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