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없이도 감각 깨운 ‘질서있는 난장판’

[공연리뷰]ACC 판소리시리즈 Ⅲ 흥보가 ‘시리렁 시리렁’을 보고
판소리 해체·틀 깨는 ‘한 편의 콘서트’
음악·춤·영상미 삼박자…눈·귀 ‘호강’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5년 10월 23일(목) 18:29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개관 10주년 기념 ACC 판소리시리즈 Ⅲ 흥보가 ‘시리렁 시리렁’의 무대 모습.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개관 10주년 기념 ACC 판소리시리즈 Ⅲ 흥보가 ‘시리렁 시리렁’이 본 무대를 앞두고 지난 22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1에서 프레스콜을 가졌다.
전통 판소리를 서사 없이 어떻게 무대에서 선보일까. 그것도 춤과 함께.

이같은 궁금증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 실험적 비주얼퍼포먼스로 증명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개관 10주년 기념 ACC 판소리시리즈 Ⅲ 흥보가 ‘시리렁 시리렁’이 본 무대를 앞두고 지난 22일 오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1에서 프레스콜을 가진 것. ‘범 내려온다’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ACC 창제작 ‘드라곤킹’의 제작진 이날치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7년 만에 다시 뭉친 작품이다.

‘시리렁 시리렁’은 구성진 가락에 현대적 사운드를 더한 소리는 관객을 귀기울이게 하고, 음악에 몸을 맡긴 원초적 동작은 무대를 압도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공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게 했다.

‘부어내고, 부어내고’로 시작해 ‘가지마오’까지 총 14곡이 연주된 가운데 판소리 ‘흥보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곡이 울려 퍼지자 거기에 몸을 맡긴 몸짓, 그리고 화려한 영상미와 사이키델릭한 조명까지 소리와 빛, 춤이 한 데 어우러져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관객들은 서사를 해체하면서도 전통 판소리 ‘흥보가’의 뼈대를 살리되 현대적으로 해석한 리듬을 통해 자연스럽게 흥얼거렸다. ‘시리렁 시리렁’이나 휘파람 소리 등은 ‘범 내려온다’처럼, 귀에 착 감기면서도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훅이 되기에 충분했다.

‘시리렁 시리렁’ 무대에서 춤을 선보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특히 무대 배경은 실험적 공연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궁중연회를 모티브로 팝아트를 떠올리게 하는 오색찬란한 영상미, 스트라이프 장면 전환, 가운데를 중심으로 좌측 및 우측으로 나뉜 무대는 미디어아트라 해도 손색이 없었다. 또한 중간 중간 영상 사이 춤을 추는 사람들 혹은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줘 자칫 동떨어졌다 여길 수 있는 현실과의 간극을 좁혔다. 시리렁 시리렁 박을 탈 때 데칼코마니처럼 표현한 점이나 다채로운 색감과 흑백의 산수화를 대비시킨 영상, 인간사를 함의하는 미래형 봇의 등장은 판소리 ‘흥보가’를 현대 감각으로 적절히 버무려 과거와 현재를 연결짓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 비주얼과 의미 둘 다 사로잡았다.

무대 위 의상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세 번에 걸쳐 바뀐 춤꾼들의 의상은 영상미와 어우러져 그 의미를 배가시켰다. 막이 시작되자마자 해외에서 힙하다고 화제가 됐던 동묘 할아버지들의 길거리 패션을 한 댄서들의 완벽한 춤은 질서가 없는 듯 전통 무용의 틀을 깨면서 자연스럽게 무대를 장악했다. 이어진 올 화이트 패션은 니트, 비즈, 깃털 등 소재로 변주를 줘 한층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 음악, 무대 배경과 조화를 이뤘고, 마지막 카모플라주 의상은 ‘듣는 음악’을 넘어 ‘보는 음악’으로 그 자체를 즐기게 했다.

‘시리렁 시리렁’은 독립적인 음악과 춤, 영상이 잘 어우러진 한 편의 콘서트였다. 어떠한 해석이나 답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 틀을 깨는 무대, 그 자체에 몰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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