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檢, 청산가리 사건 상고 포기…16년만 무죄 확정 법원, 부녀 자백 유도 등 지적…"기본권 보장 못해"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
| 2025년 11월 05일(수) 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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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만에 범죄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백모씨(75)와 딸(41), 박준영 변호사 등이 광주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외치고 있다. |
검찰은 4일 “광주고법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재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데 대해 재판부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재심에 대한 상고 포기 의사를 밝혔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 없이 피고인들에게 자백을 유도한 점, 진술거부권을 명확히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 합리적 이유 없이 수갑·포승으로 피고인들을 결박한 상태에서 조사를 진행한 점 등 형사소송법 절차나 피고인에 대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재판부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시인했다.
이어 “적법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야 할 검찰이 본연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던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오랜 기간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을 백씨 부녀와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검찰은 나아가 피고인들에 대한 보상 절차, 명예회복 조치가 신속하고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지난달 28일 광주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이의영)는 존속살해 등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던 백모씨(75)와 백씨의 딸(41)의 재심에서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은 2009년 7월 순천의 한 마을에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마시게 해 아내이자 어머니인 최모씨(당시 59세)와 지인 1명을 숨지게 하고, 주민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부녀가 부적절한 관계를 숨기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해 국민적 공분을 샀고, 사건은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1심은 부녀의 자백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유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2심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백씨에게 무기징역, 딸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해 형이 확정됐다.
그러나 범행에 쓰였다는 막걸리 구입 경위가 불확실한 점, 청산 입수 시기·경위와 법의학 감정 결과가 명확히 일치하지 않았던 점, 부녀의 진술 태도와 달리 검찰 작성 조서는 구체적으로 기재된 점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부녀는 10년 만인 2022년 1월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4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은 항소심 판결을 대상으로 다시 시작됐다.
재심 재판부는 검찰의 강압 수사를 통해 확보된 주요 자백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부녀의 손을 들어줬다.
재심 재판부는 “지적 능력과 학력, 사회적 지위를 고려할 때 딸 백씨는 경계성지능(지능지수 74점)을 가진 사람으로, 신뢰관계인 동석 없이 진술을 강요받았다”며 “진술거부권 고지도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은 단순한 의심을 근거로 반복적인 유도신문을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범행을 공모했다거나 부녀 관계가 부적절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검찰이 제시한 범행 동기와 방법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백씨 부녀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많이 늦긴 했지만 상식 대로 검찰의 상고가 포기돼 다행”이라면서 “앞으로 가족들과 상의해 형사배상과 국가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방침이다”고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한편 검찰의 상고 포기로 부녀의 무죄가 확정되면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은 다시 장기미제·미검거 사건으로 전환되게 됐다. 향후 진범을 다시 가려내는 수사 개시가 이뤄질 전망이다.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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