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모빌리티 대전환기, 광주의 전략적 선택은

류명호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스마트전기자동차과 교수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12월 02일(화) 10:41
류명호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스마트전기자동차과 교수
삼성그룹 450조원, 현대차그룹 125조2000억원.

최근 두 그룹이 발표한 초대형 국내 투자 계획은 한국 산업 구조가 앞으로 어디를 향해 재편될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인공지능(AI), 모빌리티, 그린에너지라는 세 축이 향후 산업 경쟁력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선언이다. 전통 제조 중심의 경쟁이 데이터·소프트웨어·에너지 효율 중심의 경쟁으로 이동하는 이 흐름 속에서, 광주시가 지금 이 시점에서 답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로 압축된다.

‘광주는 이번 변화의 흐름을 지켜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질서를 함께 설계하는 도시가 될 것인가’란 질문이 결코 수사적인 표현이 아닌 이유는 지난 10여년간 광주가 쌓아 온 기반 때문이다. 광주는 AI 산업융합 집적단지, 국가 AI 데이터센터, 첨단3지구를 시작으로 ‘AI 메가샌드박스’, 자율주행·모빌리티 실증 구간까지 순차적으로 구축해 왔다. 구호만 요란한 ‘AI 도시’가 아니라 실제 인프라·제도·기업 생태계를 함께 만든 국내에서 보기 드문 선도형 혁신 기반 도시라는 점에서 존재감이 남다르다. 이제 삼성과 현대차가 미래차·AI·수소·그린에너지를 앞세워 국가 단위의 산업전환 전략을 제시하면서, 양대 그룹의 중장기 투자 방향과 광주의 도시 전략은 자연스럽게 접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광주도 준비돼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삼성·현대차의 투자 구조 안에서 광주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그 선택이 지역 산업의 구조와 일자리, 기업 생태계에 어떤 성과를 낳도록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먼저 삼성의 행보를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최근 유럽 최대 공조기업 플랙트(FlaktGroup)를 인수했고, 국내 생산라인 후보지 중 하나로 광주 첨단산단이 거론되고 있다. 공조기술은 AI 데이터센터·반도체·배터리·공장 등의 열관리 전반을 책임지며, 운영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영역이다. 삼성은 플랙트의 중앙공조 기술과 자사의 개별 공조 기술이 결합하면 고부가가치 AI 공조 솔루션 생산이 가능해지고,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검증할 테스트 베드 도시가 필요할 것이다. 광주는 이 지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AI 데이터센터와 AI 집적단지를 기반으로 ‘AI를 계산하는 도시’의 역할을 이미 확보했으며 여기에 공조기 생산라인이 더해지면 ‘AI 인프라를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도시’로 위상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광주가 보유한 대형 드라이빙 시뮬레이터(DIL), 자율주행 실증 인프라, 로봇·센서 시험 환경은 공조 설비에 AI를 결합한 ‘피지컬 AI 공조’ 기술을 시험하기에 최적의 조건된다. 광주시는 첨단3지구를 AI+공조+피지컬 AI 특화 지역으로 정의하고, 플랙트와 연계 가능한 지역 부품·기계·제어 기업을 고도화해 ‘삼성-광주 동반성장 패키지’로 제안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차의 투자 방향 역시 광주에 중요한 기회다. 현대차는 향후 5년간 125조원 중 50조원 이상을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로보틱스, 수소, AI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전남 서남권 수소 클러스터 조성 계획까지 더해지며 광주·전남의 산업 지형은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는 기존 기아차 공장과 GGM을 기반으로 한 국내 유일 두 개의 완성차 공장을 보유한 자동차 도시다. 여기에 AI 집적단지·자율주행 시뮬레이터·실제 도로 기반 실증 인프라가 결합되면 ‘미래 모빌리티를 실제로 달려보며 검증하고 생산하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광주가 현대차에 던져야 할 메시지는 ‘광주에 공장을 더 달라’가 아닌 ‘광주 전체를 SDV·자율주행·수소 모빌리티 실증도시로 활용해 달라’는 제안이어야 한다. AI 메가샌드박스, AI+모빌리티 신도시 사업을 현대차의 중장기 전략과 정식 연동하고 국토부의 ‘AI 모빌리티 국가시범도시’, 산업부의 ‘피지컬 AI 기반 미래차 혁신클러스터’와 정합성을 맞추는 방식으로 광주를 국가 프로젝트의 핵심 거점으로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전략을 지탱할 핵심 축은 규제·데이터 개방·산업 생태계로 광주는 도시 전체를 실증 환경으로 설정하는 ‘메가 샌드박스 도시’, AI 학습 데이터를 개방하는 ‘데이터 규제프리 도시’ 구상을 중앙정부에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 대기업이 투자 도시를 평가할 때 중시하는 요소가 ‘실증 친화성’과 ‘데이터 접근성’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전략의 기반은 결국 인재일 것이다. 인공지능사관학교, GIST, AI영재고 등 광주의 강점을 ‘광주에서 키우고 광주에서 채용하는 인재 사다리’로 완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 투자와 직결된 인턴십·채용 연계·창업지원은 필수 요소다. 지역에서 성장한 인재가 다시 광주에서 연구·창업·산업 혁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주 여건과 혁신 환경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결국 이번 삼성·현대차의 대규모 투자 발표는 광주에 단순한 성장 기회가 아니라 산업전환의 분기점을 제시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광주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해졌다. 산업을 ‘유치하는 도시’를 넘어, 미래 산업을 ‘설계하고 검증하며 생산하는 도시’로 도약하는 것이다.

향후 10년, 대한민국 산업 지도에서 광주의 위치는 지금 이 시기의 결단과 실행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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