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사회적 단죄 지지부진…신속한 처벌을"

[12·3 비상계엄 충격 1년]
지역사회, 불안·분노 여전…진상규명·단죄 요구
‘정당성’만 강조·책임 회피 등 비판…피로감 누적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
2025년 12월 02일(화) 18:45
“그 날을 누가 잊을 수 있겠습니까. 철저한 진상규명과 신속한 처벌이 절실합니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발한 지 1년이 됐지만, 광주·전남 지역민의 기억 속 생채기는 여전히 깊게 남아 있다.

계엄을 주도한 세력은 명확한 사과 없이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고, 법적·사회적 단죄도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2일 광주 서구 광천동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이곳에는 타 지역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과 이들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커다란 여행 가방과 선물꾸러미를 든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헤어지는 가족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누군가 “12·3 비상계엄 1년”을 언급하자, 시민들의 시선이 일제히 TV 화면으로 쏠렸다.

사람들은 “벌써 1년이나 됐네”, “그때 너무 무서웠지”라며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떠올렸다. TV 화면이 바뀌어도 표정이 굳은 채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시민도 있었다.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당일의 아찔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젓는 모습도 눈에 띄였다.

계엄 선포 직후 광주 시민들이 느꼈던 공포가 아직도 일상 곳곳에서 잔상처럼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20대 청년 정지운씨는 계엄 선포 이후부터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인용까지 이어진 ‘비상계엄 무효’ 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정씨는 “국회 유리창이 깨지고 군인들이 진입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보면서 손이 떨렸다”며 “그날 이후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계속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하지만 끝내 민주주의를 지켜낸 건 광주의 오월정신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광주 송정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TV 뉴스에서 ‘비상계엄 1년’ 소식이 나오자 여행객들은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주시했다.

일부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수사가 장기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는 이들도 있었다.

광주 북구에 사는 최정수씨(64)는 지인에게 12·3 비상계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놀라 1980년 5월이 떠올랐다”고 인상을 구겼다.

최씨는 “1980년 5월 당시에 초등학생이었지만 5·18의 참혹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다시 그 비극이 반복될까 두려웠다”면서 “모두가 잘못임을 아는 데도 당사자들은 여전히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태도가 더 큰 분노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명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국민의 평화로운 일상을 망가뜨린 내란 주도 세력들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브리핑을 연 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했다.

그러나 국회가 단 2시간 30여분 만에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계엄은 사실상 즉각 무효화됐다. 이후 국회는 윤 전 대통령을 탄핵했고, 헌법재판소는 선포 111일 만에 탄핵을 최종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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