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 이후 가투하며 보낸 소회를 담았죠"

■12·3비상계엄 뒤 1년 만에 시집 낸 박종화씨
122일 동안 소회 250편 시로 묶은 ‘계엄수첩’ 출간
시편마다 시대의 아픔 넘쳐…내란 세력 청산 희망
"나라의 일 말고 시인의 눈으로 본 세상 쓰고 싶어" .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12월 02일(화) 18:57
시집 ‘계엄수첩’ 표지
“내란청산 지연 등 우리들이 우려한 것들이 현실이 돼 안타깝죠. 비상계엄 정국에 대한 탄식과 내란세력 청산을 위한 투쟁 등에 관한 것들이 시 곳곳에 나타나고 있을 거예요. 비상계엄이 1년 다 돼 가도록 (내란세력 단죄가)지지부진하는 등 청산되지 못하고 있어 어쩌면 내란투쟁 당시보다 더 숨쉬기 힘들고 정신적 압박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뭔놈의 눈치를 그렇게 보는지 신속하게 처리할 것들을 그러지 못해 허망하구요. 그래서 마음이 내란 정국보다 지금이 더 무겁다고 봐야죠. 지금부터라도 늦었다고 하지 말고 더 빨리 청산을 해서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줄여 주면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계엄 사태 이후 가투(거리투쟁)를 하며 보낸 소회들이 시 속에 투영돼 있어요.”

3일이면 12·3비상계엄이 발발한 지 정확하게 1년이 되는 날이다. 5·18민중항쟁으로 반석에 올려놓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압살되고 그 가치가 크게 훼손될 뻔한 위기를 맞았던 것은 분명하다. 광주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비상계엄을 촉발했던 대통령의 탄핵을 위해 거리로 민주시민들이 모여 투쟁을 벌였다.

계엄 선언 이후 날씨는 차가웠고, 눈도 많이 내리던 시절 아랑곳하지 않고 가투에 나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합심했었다.

누구랄 것 없이 거리로 나서 비상계엄 시국을 타개하기 위해 온힘을 합쳤다. 당시 삶의 희망마저 사그러드는 아픈 경험을 겪어야만 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터다.

이런 가운데 어렵게 민주정부가 출발했지만 여전히 내란세력은 활개를 치고 있는 형국으로, 내란세력이 청산이 되지 않고 있는 심정을 시편들에 투영해 최근 시집을 낸 민중가수이자 시인 등으로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활동을 펼쳐온 광주 출생 박종화씨가 2일 인터뷰를 통해 밝힌 소감이다.

민중 가수이자 시인 등으로 다방면에 걸쳐 폭넓은 활동을 펼쳐온 박종화씨.
박 작가는 배반이나 배신, 반동의 삶에 대한 문학적 재해석을 가한 시집 ‘치밀한 빈틈’을 지난 4월 펴낸데 이어 6개월 만에 다섯번째 시집 ‘계엄수첩’(문학들 刊)을 펴냈다.

12·3비상계엄 이후 1년여만에 나온 ‘계엄수첩’은 2024년 12월 3일, 이른바 ‘계엄 사태’ 이후 가투를 하며 보낸 122일 동안의 소회를 250편의 시로 기록한 작품이 실렸다.

시인은 비상계엄 당시로부터 내란세력에 편승한 자들, 그로 인한 굴곡진 일상들 등 부조리한 세상, 내란 청산이 되지 않는 등 시민들이 여전히 분노에 차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이르기까지 이를 시적 감수성으로 풀어내고 있다. 수록된 작품 중 ‘윤석열의 계엄령’이나 ‘계엄이 터졌다’ 등은 비상계엄 당시를 망라해 시편마다 시대의 아픔이 넘친다.

‘…전략…//비참 그 자체다/전부를 바쳐 가꾼 소중한 투쟁의 자유를/한낱 먼지처럼 날려 보내야 하는 현실을/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밤 열두 시가/악마의 편으로 기울어가는 어두운 공포다//좌절이기도 하다/산다는 것이 투쟁하는 것 외엔/아무 것도 아니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은/태어난 이유가 부질없었던 그야말로 1980년 5월이다//…후략…//나의 모든 무기여/일분일초를 긴장하라/어서 가자 악마가 들끓는 그곳으로’(‘윤석열의 계엄령’)라고 노래한다. 또 ‘즉각 생각한다/굳게 결심한다/젊은이들 대신해서/총을 맞아 주자고//살 만큼 살았다고/더 살아서 딱히 할 일도 없다고/입술 물고 서럽게 결심한다//어릴 적 계엄 당시/계림동 오거리 동네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을/45년이 지나 다시 터진 게엄을 머리에 인채/급하게 짐을 싸면서 곱으로 곱씹는다’(‘계엄이 터졌다’ 전문)고 읊는다. 이들 시편들에서는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과 답답하고 한층 복잡해진 내면의 단상들이 드러난다.

민중가요를 부르며 가투에 나선 박종화씨.
이번 시집은 ‘계엄 1권-아무것도 없다’를 비롯해 ‘계엄 2권-그 나이에’, ‘계엄 3권-시간’, ‘계엄 4권-진실’, ‘계엄 5권-견딜 수 없이 견디고 있다’, ‘계엄 5권 이후-지옥 가는 길의 다리’ 등 제6부로 구성됐다.

송경동 시인은 표사를 통해 “이 시집은 지난 내란의 겨울에 대한 피눈물 나는 시적 기록을 넘어 험한 시대와 광장의 노래꾼이자, 시인, 붓쟁이로 살아온 그의 평생이 담긴 눈물과 분노의 결정이다. 나의 역사이기도 하고,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시편들 앞에서 숙연해진다”고 했으며. 한도숙 농부시인(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은 “광주의 상처가 머릿속에서 늘 날 선 칼로 일어나는 시 구절 하나마다 우리를 다시 무장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는 투사다. 바람 앞에 마주 서 깃발을 움켜쥐고 내란의 분노를 붓으로 후려친다. 민중을 거역하는 권력 앞에 내보이는 역사의 핏빛 경고장”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 작가는 “이번처럼 비상계엄 같은 나라의 일(사태와 사건 등)을 주제로 시집을 더는 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냥 세상 살아가는 일상이나 시인의 눈으로 폭넓게 바라본 세상을 다음 시집에는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종화 작가는 광주 출생으로 전남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 서예가 및 공연연출 총감독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을 펼쳐왔다.

1987년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해 30여 차례의 단독공연과 ‘파랑새’, ‘지리산’, ‘바쳐야 한다’, ‘투쟁의 한길로’ 등 400여 창작곡을 발표했으며, 그동안 시집 ‘치밀한 빈틈’ 등 4권을 펴냈다.

서예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7년 개인전 ‘소품’을 시작으로 ‘나의 삶은 커라’, ‘오월’, ‘서예콘서트’, ‘꿈’, ‘임을 위한 행진곡’, ‘한글 소나무’ 등을 열었고, 서예산문집으로 ‘나의 삶은 커라’ 등 4권을 펴냈다. ‘30주년 5·18전야제’ 등 다수 프로젝트 총감독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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