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권익위원 칼럼]감사의 계절 이지안 잇다커뮤니케이션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
| 2025년 12월 11일(목) 1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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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는 아무리 바빠도 일정을 조정해 봉사활동에 참여하곤 한다. 연말에 열리는 봉사활동은 평소보다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해 다른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시기가 시기인 만큼 연말에는 배식이나 청소보다 연탄과 김장 김치 나눔 활동이 유독 많다.
두툼하게 차려입은 옷 위에 흰색 우비를 앞뒤로 뒤집어 입고, 일회용 장갑 위에 목장갑까지 끼고 나서야 비로소 새카만 연탄을 나를 준비가 끝난다. 양손으로 들어도 묵직한 무게감에 저절로 허리가 숙여지는 연탄을 나르기 위해 우비 군단이 좁은 골목길에 일렬로 늘어선다. 행여 떨어뜨릴까 조심스레 한 장, 한 장 옮기다 보면 어느새 창고 한쪽에 새카만 연탄 더미가 빽빽하게 쌓인다. 연탄 100여장이면 당분간 겨울을 견딜 수 있어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요즘은 도시가스나 기름보일러로 난방이 대부분 바뀌어 연탄을 때는 집은 극소수다. 그래서 연탄 제조 공장도 하나둘 사라지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곳조차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전달하는 이 연탄이 내년에는 준비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스럽기도 하다.
빨간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비닐 모자까지 쓴 채 몇 시간씩 김장을 하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커다란 통에 빨간 양념을 버무린 포기김치를 차곡차곡 담아 각 집에 전달하고 나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연탄이든, 정성스레 담근 김장 김치든 사회취약계층에 전달하고 나면 힘들기보다 마음이 더 풍요로워지곤 한다. 올해도 여러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따뜻한 마음이 불현듯 사그라드는 순간도 있다. 처음 봉사활동을 할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횟수가 늘고 해를 거듭할수록 보이기 시작해서다. 바로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이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설 때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했던가. 잠시나마 활기를 채워 넣었던 공간에 봉사자들이 빠져나가면 남겨진 이들의 미소 위로 다시 쓸쓸함이 감도는 것이 보인다. 그 순간에는 도왔다는 뿌듯함보다 죄송함과 안타까움이 더 깊게 남는다. 발걸음이 무거워져 연신 뒤돌아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연말에만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게 아니라, 평소에도 더 틈틈이 봉사활동을 해왔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한 번 할 걸 두 번 하고, 두 번 할 걸 세 번 했더라면 그렇게 한 번 한 번이 쌓여 더 자주 이웃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 됐을 텐데.
우리가 건넨 연탄 한 장, 김치 한 포기가 잠시나마 추위를 잊게 하고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건 분명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아마 ‘지속적인 관심’일 것이다. 며칠만 지나도 다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고, 빈 냉장고를 마주할 그분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시려온다. 연말이 되어서야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던 마음을 꺼내 드러내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스스로 되묻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돕는 일은 거창한 노력이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실천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어 봉사활동에 참여하거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그 따뜻함을 기억하며 다시 내년을 버틸 용기를 얻을지도 모른다.
연말은 분명 감사의 계절이지만, 감사와 나눔이 특정한 시기에만 머무르는 건 아쉽다. 한 해의 끝에서야 뒤늦게 마음을 챙기기보다 평소에도 자연스레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도 작은 여유를 내어 이웃을 살피는 일이 우리의 일 년을 채우는 또 하나의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