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오윤 40주기 맞아 삶과 예술 ‘집대성’

첫 미술사 단행본 출간 의미...족적 조망
일생과 작품 전체적으로 조명 4부 구성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12월 19일(금) 22:50
‘오윤, 얼굴을 응시하다’(문학들 刊)
‘봄의 소리’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였던 오윤(1946-1986)의 40주기를 맞아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새롭게 집대성한 미술사 책이 나왔다.

한 시대에 한 획을 그은 오윤이지만 그의 일생과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책이 부재한 가운데 미술학자인 배종민씨가 미술서 ‘오윤, 얼굴을 응시하다’(문학들 刊)를 펴내 의미를 더한다. 그의 작품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도 그동안 전시도록 외에 이렇다 할 참고서가 없어서 목말랐던 이들에게는 이 책이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오윤의 판화를 보면 ‘아하, 이 그림’ 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1980년대 시집이나 소설집 등 단행본의 표지에 그의 판화는 단골로 등장했다. 당시 그는 한국 민중미술운동의 상징적인 작가였다. 그는 ‘현실동인’(1969), ‘현실과 발언’(1979), ‘민족미술협의회’(1985) 등 대표적 민중미술 단체의 창립에 모두 참여한 유일한 작가로, 그의 궤적은 민중미술의 형성과 전개를 가늠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 책은 저자가 10년을 훌쩍 넘긴 집념의 역작으로, 화가 오윤의 삶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형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화가 오윤의 작품 곧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해왔다. 그 시간 속에서 말하지 않는 그림, 침묵하는 선, 죽음을 죽지 못하고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형상을 읽어 내려고 노력했다. “질문하고, 다시 보고, 다시 질문하며 쓰기 시작한 글”이 이 책이다. 연구의 결과물로 쓴 논문들을 일반인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은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기존의 정치 이념 중심의 해석을 넘어 오윤의 예술세계를 ‘탈-해골-도깨비-칼노래-귀환하는 인간’이라는 도상 계보와 감응의 윤리라는 키워드로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작품과 대화하듯 감응을 통해 전개하는 방식은 오랜 응시와 숙고의 시간이 없이는 불가능한 저술 방식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제1부는 오윤 예술의 형성과 전환을 검토하며 그의 인식론적·윤리적 기반을 살피고 있으며, 제2부는 1970~1980년대 출판미술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그의 활동을 추적한다. 이어 제3부는 대표작들을 통해 죽음과 기억, 침묵과 응시가 어떻게 형상화됐는지를 분석하고, 제4부는 후기 작품을 중심으로 귀환과 해원, 신명의 리듬으로 나아가는 감응의 구조를 조명한다.

각 장은 작품 해석에 충실하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다시 묻고 들어야 할 윤리적 과제를 함께 제시한다. 그의 판화는 죽은 자와 산 자, 떠난 자와 돌아온 자,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 놓인 감응의 다리였다.

‘원귀’
생전 오윤 작가의 작업 모습
저자는 서문을 통해 “오윤은 짧은 생애 동안 웃음 열 장도 채 그리지 못했지만, 남긴 판화는 지금도 묵묵히 우리를 응시한다. 애도는 단순히 타인을 기리는 일이 아니라, 그 상실 앞에서 나 자신 또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됨을 일깨우는 사건이다. 오윤은 애도의 요청에 감응으로 응답한 ‘관세음작가’였다. 이 책이 독자에게 그 응시 앞에 잠시 멈추어 서고, 들리는 침묵의 울림 속에서 오늘의 삶을 다시 묻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오윤 작가는 부산 출생으로 서울대 조소학과를 졸업,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 선화예술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오윤의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민중미술의 감응 구조와 윤리적 형상성을 심화 분석해온 저자 배종민씨는 광주 출생으로 전남대 국사교육과 및 대학원 졸업 후, 2005년 ‘조선 초기 도화기구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여 년간 한국 현대미술사와 민중미술운동사를 연구해왔으며, 1980년대 민중미술의 형상성과 윤리적 실천에 주목해왔다. ‘한국예술연구’와 ‘민주주의와 인권’ 등 주요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5·18 항쟁의 예술적 형상화’가 있으며, ‘5·18 그리고 역사’, ‘민주장정100년 광주·전남지역 사회운동사: 문화예술운동’,‘오월-1980년대 광주 민중미술’ 등 공동 집필에도 참여했다. 2005년, 5·18기념재단과 전남대 5·18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5·18민주화운동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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