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다시 고르는 메뉴

김미리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팀장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12월 26일(금) 18:26
김미리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팀장
여기서도 비건으로 먹을 수 있다고?

광주 골목 어귀의 작은 분식집에서부터 동네 카페, 시장통 빵집까지 요즘 참 자주 듣는 말이다. 비건은 ‘특별한 사람들의 식단’에서 용감하게 탈출해, 이제는 도시의 생활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비단 광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식문화를 통한 기후 대응이 공공정책의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공립학교 절반 이상을 플랜트 급식으로 바꿨고, 뉴욕시는 환자식 기본 옵션을 비건으로 지정했다. 기후위기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거의 같은 말이 되고 있다.

국내 도시의 변화도 빠르다. 서울의 ‘서울비건페스타’, 부산의 ‘비건그라운드’, 제주에서 매년 열리는 ‘제주 비건페스티벌’, 대구의 ‘대구비건페스티벌’까지 전국 곳곳에서 “비건은 재미있다”는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 중이다. 도시마다 규모와 분위기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지역 식당과 메이커들의 실험, 그리고 비건을 통해 기후위기를 생활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이다.

광주는 이 흐름을 결코 늦게 따라간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2010년대 초반부터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주 1일 채식운동’을 통해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기후행동을 제안했다. 한 끼 줄이는 고기가 온실가스, 토양 훼손, 물 사용량 감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확실히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연구보다 중요했던 건 시민이 직접 “나도 해볼 수 있겠다”고 느끼는 경험이었다.

2022년부터는 이 실천이 훨씬 더 매력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광주 비건 페스티벌이다. 첫해엔 조용했던 행사는 해마다 규모와 에너지가 커지며, 이제는 광주에서 가장 활기찬 먹거리·환경문화 행사 중 하나가 됐다. 비건식빵, 채소전, 떡 디저트, 자투리 채소 피클, 업사이클 생활용품까지 비건이 ‘참는 음식’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뒤집고, 맛과 재미, 생활실천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광주는 먹거리 지도를 새로 쓰는 데도 앞서고 있다. 협의회가 여러 단체들과 함께 손 맞대어 제작한 광주 비건지도와 기후미식도시 지도는 시민들의 경험을 데이터로 전환해, 지역 식당들의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유튜브 영상 콘텐츠는 광주의 비건 식문화가 얼마나 다양하고 맛있는지를 보여주며 “비건을 시작하고 싶은데 어디서, 무엇부터 먹어볼까?”라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단순한 음식 선택을 넘어, 지역이 함께 만드는 지속 가능한 문화라는 더 큰 흐름이 존재한다. 비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건강, 윤리, 환경 이유가 저마다 다르지만, 광주의 특유의 공동체성은 이 다양한 동기를 서로 연결해 하나의 시민 실천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특히 청년과 가족 단위의 참여가 증가하면서 비건은 더 이상 특정 세대의 취향이 아닌 도시 전체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학교·직장·동네 가게에서 만나는 작은 변화들이 서로를 북돋우며, 광주가 ‘기후에 책임 있는 도시’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비건을 둘러싼 선택을 개인의 취향에서 도시의 미래 방향성으로 끌어올리며, 앞으로 광주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도시들이 기후위기의 해법을 식문화에서 찾고, 국내 도시들에서 비건 축제가 일상의 자리로 스며들고 있다면, 광주는 실천과 즐거움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다음번 점심 메뉴를 고르기 전 잠시만 생각해보면 어떨까.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맛있게, 그리고 조금 더 지구를 덜 아프게 만드는 선택을.

그 작은 변화들이 쌓여 광주를 ‘기후미식도시’로 완성해가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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