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계는 배신하지 않는다, 오직 ‘방심’이 우리를 배신할 뿐

조환진 안전보건공단 광주광역본부 안전인증검사부장

광남일보
2025년 12월 30일(화) 15:56
조환진 안전보건공단 광주광역본부 안전인증검사부장
광주·전남의 산업지도를 펼쳐보면 하남산단과 평동산단, 그리고 여수·목포 산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장이 핏줄처럼 얽혀 있다.

그곳에서는 프레스가 철판을 찍어내고, 크레인이 중량물을 들어 올리며 우리 지역 경제를 힘차게 견인한다. 하지만 안전인증검사부장으로서 마주하는 현장의 민낯은 때론 위태롭기 그지없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안전 투자 여력이 부족한 5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의 현실은 ‘안전 양극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운이 아니다. 그것은 기계적 결함과 인간의 방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프레스 끼임 사고’다. 얼마 전 방문했던 한 제조 사업장의 사례다. 20년이 훌쩍 넘은 노후 프레스 기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작업자의 손을 보호해야 할 광전자식 안전장치(센서)가 꺼져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답변은 단순했다. “센서가 예민해서 자꾸 기계가 멈추니 작업 속도가 안 난다”라는 것이었다.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혹은 귀찮다는 이유로 자신의 손을 지켜줄 유일한 방패를 스스로 내려놓은 셈이다.

‘설마’하는 순간, 기계는 무자비한 흉기로 돌변한다. 실제로 많은 근로자가 이 방호장치만 켜져 있었어도 피할 수 있었던 사고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또 다른 시한폭탄은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육안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크레인의 와이어로프가 속으로 삭아 들어가다 끊어지거나, 압력용기의 두께가 부식으로 얇아져 폭발하는 사고들이다. 우리가 내 가족을 태우는 자동차를 정기적으로 검사하듯, 산업현장의 위험 기계도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필수적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안전검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검사를 통해 전문가들은 설비 운용자가 확인하기 힘든 결함을 비파괴 검사 등을 통해 찾아내고, 설비의 안전장치가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등 설비의 근원적 안전을 확인하는 필수적 과정이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을 타고 제조 현장에서도 AI 기술과 로봇이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다. 위험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고, 센서가 고장을 예측하는 ‘스마트 안전’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만능은 아니다. 인간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협동 로봇이 늘어나면서 로봇과의 충돌이나, 유지보수 중 오작동으로 인한 끼임 등 새로운 유형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첨단 장비일수록 그에 맞는 안전 수칙과 교육이 병행되지 않으면, 스마트 기술 역시 또 다른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안전보건공단은 이러한 사고를 막기 위해 제조 단계의 ‘안전인증’제도부터 사용 단계의 ‘안전검사’까지, 기계의 전 생애주기(Life-cycle)를 관리하고 있다. 노후 기계 교체가 부담스러운 영세 사업장을 위해서는 교체 비용을 지원하는 재정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결국 스위치를 누르는 것은 사람이다. 사업주에게 안전 비용은 ‘지출’이 아니라 기업의 존폐를 가르는 가장 확실한 ‘투자’여야 한다. 근로자 역시 “나는 베테랑이라 괜찮아”라는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기계는 경력 20년의 베테랑과 입사 1년 차 신입을 구별하지 않는다.

오늘 퇴근길, 작업복을 벗고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 평범한 일상. 그 행복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작업 전 방호 덮개를 확인하고 정비 중 전원을 차단하는 사소한 원칙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계가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지키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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