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광주·전남 통합, 구호가 아닌 설계도로 말해야 한다"

박필순 조국혁신당 광양시위원장

광남일보@gwangnam.co.kr
2026년 01월 12일(월) 16:23
박필순 조국혁신당 광양시위원장
광주·전남 통합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든다.

지방 소멸과 인구 감소, 수도권 일극 체제의 압력이 커질수록 “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문장이 쉽게 유통된다.

그러나 통합은 행정 경계선을 지우는 작업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성이고,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설계도다.

김대중 정부 시기 광주와 전남의 분리는 단순한 구획 조정이 아니었다. 광주를 광역시로 육성하고, 전남을 독립 광역자치단체로 자립시키려는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결과였다. 그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필자는 2005년 전남도청 이전 당시 전라남도의회 운영위원장으로서 광주 청사에서 전라남도의회 현판을 내렸다. 광주에서 무안으로의 이전은 분리의 상징적 완결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냉정하다. 낙후 지역 개발과 전남 서부권 행정 중심지 형성은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으나, 전남의 인구 감소는 멈추지 않았고 산업 구조의 근본적 전환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통합을 과거 분리에 대한 ‘복원’으로, 혹은 “통합만이 해법”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또 다른 비약이다.

행정구역 통합이 인구·일자리·교육·문화·주거 같은 구조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경계를 합친다고 사람이 돌아오고 기업이 생기지는 않는다. 통합은 필요조건일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왜 지금인가’다. 초광역권·메가시티 구상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힘을 얻는 흐름 속에서, 통합 논의가 다시 선거의 언어로 소비될 가능성이 있다.

특정 정당의 장기 독점 구조가 고착된 지역 정치 지형에서는 특히 경계해야 한다. 통합이 지역 미래를 위한 결단이 아니라, 갈등을 덮고 표를 모으는 구호로 전락한다면 통합 이후의 상처는 더 깊고 길어질 것이다.

통합의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은 전남 동부권에 대한 실질 대책이다.

동부권은 국가 공공기관 이전에서 사실상 배제되어 왔다는 누적된 박탈감, 호남선 중심으로 설계되는 교통·경제축이 만드는 소외감으로 통합은 ‘정치적 흡수’로 느끼게 한다.

전라선 지역은 섬진강 유역 수자원과 광양만권의 잉여 전력은 ‘지산지소(地産地消)’ 동부권의 핵심 자원이다. 이 자원과 산업 기반이 통합의 주변부로 취급 된다면, 물리적 통합은 가능해도 심리적 통합은 불가능하다.

현재 광주의 물류 컨터이너는 광양항을 두고 호남선에서 경부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은 먼저 경제적 연결 구조를 보여줘야 한다.

호남선과 전라선으로 분절된 교통망과 경제축을 어떻게 하나의 생활권·산업권으로 묶을지, 공공기관·대학·의료·문화 인프라를 어느 원칙으로 배치할지 청사진이 공개되어야 한다. “통합하면 좋아진다”가 아니라 “통합하면 이렇게 바뀐다”를 숫자와 일정, 제도로 제시해야 한다.

통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지역을 살리는 것은 경계선이 아니라 산업과 일자리, 교육과 문화, 주거와 돌봄의 교통 생태계다. 정치적 판단으로 밀어붙이는 통합은 바람 소리만 요란한 F1 경기장처럼 공허한 상처를 길게 남길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설계도, 속도가 아니라 공감하는 신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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