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서사 조망…운동 이후 조용한 삶 초점

■민주화운동 원로 김상윤씨 시민문화에세이집 펴내
‘50년 동안 흔들리며 배운 세상…소박한 운동사’
만남과 갈등 등 24편 수록…광주 깊은 맥락 짚어
"광주 잘 모르는 분들에 새 지도 한 장 주는 일"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6년 01월 13일(화) 18:33
시민문화에세이집 ‘50년 동안 흔들리며 배운 세상- 나의 소박한 운동사’.
광주교도소 출감할 당시 저자 모습.(1975.2.16)
광주 민주화운동의 원로이자 시민운동을 주도했던 김상윤씨가 1975년 유신독재 시대 민청학련 혐의로 수감 중이던 광주교도소에서 형집행정지로 출감한 지 50년을 맞는 해를 맞아 시민문화에세이집 ‘50년 동안 흔들리며 배운 세상- 나의 소박한 운동사’(작가와 刊)를 최근 펴냈다.

제목에서 흔들리며 배운다는데서 얼핏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 떠오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구절처럼 저자 또한 부조리한 시대 심연이 통째로 심하게 흔들리는 시간들을 살아내야 했으니 제목에서 흔들린다는 의미는 단순히 소소한 일상으로 촉발된 흔들림이 아니었을 터다. 엄혹한 시대 상황에서 민주화를 외치고, 투쟁을 실천하며 바라본 세상이 근원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근원을 꿰뚫어봤을 것이다. 이런데서 그 흔들림은 세상의 본질을 깨닫는 일이기도 했을 듯 싶다. 물론 50년 동안 흔들렸다고 한 것으로 보아 그 진동은 게속됐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회고 형식으로 기술된 이 시민문화에세이집은 생사를 넘나드는 두 번의 투옥을 불러온 민청학련과 5·18민중항쟁 등 굵직한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오히려 그 이후의 시간, 시민과 함께, 지역과 더불어, 조용히 이어온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문화사업, 사회적기업 실험, 윤상원 열사 기념관, ‘광주마당’ 설립, 민주주의전당 유치 활동, 유네스코 창의도시와 미디어아트 사업 등을 조망한다. 이런 행보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각기 다른 사업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한 가지 믿음이 흐르고 있다. 그 한 가지 믿음은 “문화야말로 민주주의의 일상화를 이끄는 힘”이라는 소신이다.

마중나온 양성우 시인과 포옹(1975.2.16)
이 시민문화에세이집은 대부분 드라마틱한 장면 대신, 수많은 만남과 협력, 때로는 좌절과 갈등이 24편으로 나뉘어 담백하게 기록되고 있다. “책임있는 자리를 삼가겠다”는 다짐, 함께한 동지와 문병란, 송기숙, 이홍길, 김동원 교수 등 스승에 대한 감사, 실패를 통해 배운 겸손 등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광주의 깊은 결을 담아내고 있다.

이 시민문화에세이집은 단지 한 인물의 자서전적 기록이 아니라 광주라는 도시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시민사회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문화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서로를 살려왔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자료로 이해된다. 동시에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이어가야 할지 묵묵히 묻고 있다.

표지와 본문에 담긴 예술 작품들은 ‘김상윤’이라는 인물 서사를 시각적으로 확장해 보여준다. 재독작가 정영창의 광주의 트라우마를 응시하는 시선, 5·18광주민중항쟁시 버스를 몰며 싸운 동생이자 동지인 김상집의 서사적 초상을 통해 그려낸 한 인간의 내면 등을 망라한 것들이 내용과 함께 우리를 더 깊은 성찰로 이끈다.

출판사 관계자는 “광주를 아는 분에게는 새로운 깊이를, 광주를 잘 모르는 분에게는 새로운 지도 한 장을 건네주는 일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하심(下心)으로 세상을 배우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이 회고는 더없이 따뜻한 동행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자인 김상윤씨는 전남대 학생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다 제적당한 후 독서모임에서 활동하다가 당시 금서로 지정된 인문사회과학서를 학생과 시민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1977년 계림동에 녹두서점을 열었다. ‘녹두서점의 오월’ 등을 펴낸 바 있다. 현재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을 맡고 있다. 부인은 전 오월 어머니집 이사장을 맡았던 정현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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