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수교 140년 맞아 프랑스서 시집 출간

전남 순천 거주 석연경 시인 ‘황금 성전의 숲’ 선봬
‘말의 사원’ 진입 여정 투영 등 "보편적 은유" 제시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6년 02월 20일(금) 17:30
석연경 불어시집 표지
전남 순천에서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 소장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석연경 시인이 ‘말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시의 여정을 투영한 불어 시집 ‘La foret du temple d’or‘(황금 성전의 숲)를 파리의 문학 전문 출판사 Editions du Cygne(백조출판사)에서 펴냈다. 프랑스와 한국 수교 14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 현대시가 프랑스 문학적 맥락 속에서 독립된 단행본으로 소개된 것이다. 시집은 현재 프랑스 아마존을 비롯한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 중이며, 향후 낭독 행사와 문학 대담 등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프랑스어 원제 ‘La foret du temple d’or‘에서 temple은 특정 종교적 공간을 지시하기보다 신성한 장소, 곧 마음과 사유가 머무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종교적 공간이라기보다 언어와 침묵,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세계가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성스러운 정신적 장소이며, ’황금 성전의 숲‘은 공(空)을 시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자 인드라망의 시적 구현으로 이해된다.

특히 화엄사상의 핵심 비유인 인드라망(因陀羅網)은 우주를 무수한 구슬이 서로를 반사하며 끝없이 얽힌 구조로 설명한다. 하나의 존재는 전체를 반영하며, 전체는 하나에 깃들어 있다. 숲은 개별 시편들이 모여 형성하는 유기적 세계를 상징한다. 또 세계의 존재들을 상징한다. 기억과 시간, 생과 소멸의 사유가 층위를 이루며 겹쳐지는 구조 속에서, 독자는 생태적이고 우주적인 공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프랑스 작가이자 문학 연구자인 장-피에르 폴라크는 서문 ‘ENTRONS DANS LE TEMPLE DES MOTS’(말의 사원으로 들어가다)에서 이를 “비밀스러운 사원의 문을 여는 경험”이라 표현했다. 프랑스 독자들이 낯선 문화적 풍경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 문턱을 넘는 순간 언어와 은유의 깊이를 발견하게 된다는 평이다.

석연경 시인
이번 시집은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해온 자연(생태), 불교적 사유, 사랑, 우주적 상상력 등 네 개의 축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시인의 사유 지형을 하나의 구조로 제시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

자연은 사유의 근원적 장소로 등장한다. 바다의 숨결과 파도의 율동, 산과 나무, 정원의 침묵은 인간의 시간과 기억을 환기하는 매개다. 자연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되는가에 대한 인문학적이며 윤리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불교적 사유는 침묵과 절제 속에서 드러난다. 첫 시편이 한 스님의 화장 장면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순환의 일부로 제시된다. 무상과 연기라는 세계관은 인간을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관계 속 존재로 재배치한다. 이는 생태적인 사유의 발현으로 읽힌다.

사랑은 기억과 시간 속에서 재해석된다. 또렷해지는 감정의 빛, 스쳐 지나간 인연의 잔광은 절제된 언어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우주적 상상력은 인간을 자연과 별빛, 시간의 순환 속에 위치시킨다. 정원은 식물의 공간을 넘어 ‘우주의 축소판’으로 형상화된다. 미시적 공간과 거시적 질서가 교차하며, 시는 한국적 장소성을 넘어 보편적 존재론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 네 축은 자연은 순환과 이어지고, 순환은 사랑의 덧없음과 만난 뒤 우주적 인식으로 확장되며, 그 인식은 다시 자연으로 귀환한다. 반복과 회귀의 원형 구조 속에서 시집은 하나의 통합된 사유 공간을 형성한다.

석연경 시인의 시는 사찰과 자연을 매개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문화적 표지를 넘어 사유의 구조를 공유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석 시인은 “궁극적으로 이번 출간은 한국 현대시의 생태적·우주적 상상력이 세계 문학 담론 속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황금 성전의 숲’은 지역적 상징이면서 동시에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묻는 보편적 은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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