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한 무기는 기억과 기록"…‘소년이 온다’ 오마주

박기복 감독, 5·18 연작 세 번째 신작 '밥 '선봬
‘특별상영회’ 3~5월 광주·전남서 릴레이 순회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6년 02월 24일(화) 10:28
영화 ‘밥’ 스틸 컷.
영화 ‘밥’ 스틸 컷.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가장 강한 무기는 기억과 기록입니다. 정치보다 깊고, 이념보다 따뜻한 ‘밥’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출한 박기복 감독이 최근 5·18광주민주화운동 세 번째 연작으로 신작을 선보이기에 앞서 이처럼 밝혔다.

여기서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공동체와 평등, 존엄의 상징이라는 게 박 감독의 설명이다.

신작 ‘밥’은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낙화잔향-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다-’에 이은 세번째 5·18광주항쟁 영화다. 현재 후반 작업을 막 마친 상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오마주했다. 굶어 죽은 모녀의 영혼을 위로하는 무용수의 의식 속에 소설 속 인물 동호의 ‘전생’이 스며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는 ‘지금, 동호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날,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동호가 ‘밥’이 돼 우리 곁으로 돌아왔을 때, 소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를 생각케 한다.

소설 속 동호처럼, 영화 속 동호 역시 대사가 없다. 그러나 무대사(無臺詞) 형식과 눈빛, 몸짓, 구음(口音)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설인 ‘소년이 온다’가 언어의 밀도로 기억을 증언했다면, ‘밥’은 침묵과 몸의 움직임으로 기억을 재현한다. 서사 중심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낯설 수 있으나, 감각의 층위를 통해 오월의 현재성을 질문하는 방식이다. 특히 시간의 경계를 해체한 서사 구조, 방역 요원으로 대체된 계엄군의 이미지, 야차로 상징되는 극단주의 세력 등 실험적 영화 문법이 눈에 띈다. 형식은 파격적이지만, 국가폭력과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고 직관적이라는 평가다.

주요 촬영지는 화순 이양 쌍봉사, 광주 희경루, 구 적십자병원, 충장로 구도심 등 광주·전남의 역사적 공간이다. 박 감독은 5·18의 역사와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온 한편, 전남 지역의 인구 소멸과 학교 위기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역의 세계화, 이른바 글로컬(glocal) 관점에서 지역의 역사와 사건을 영화적 소재로 확장해 눈길을 끈다.

영화 ‘밥’ 스틸 컷.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출한 박기복 감독이 최근 5·18광주민주화운동 세 번째 연작으로 신작 ‘밥’을 선보인다.
작품은 광주문화재단 광주문화자산콘텐츠화제작지원사업 2025~2026년 연속지원 선정작으로 마련됐다. 전남예술고 무용과 박소희, 연극과 윤성휘, 노건우, 박서연 등이 출연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몸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기억의 문제를 다음 세대의 몸을 통해 이어간다는 점에서 지역 청소년 배우들이 참여한 점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의미라 할 수 있다.

영화 제작이 마무리되면서 제작사 무당벌레필름은 박 감독의 전작 ‘낙화잔향-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다-’와 신작 ‘밥’을 묶은 옴니버스 형식의 특별상영회를 마련한다. 상영회는 오는 3월부터 5월까지 5·18민주화운동 46주년을 앞두고 광주 5개 자치구와 전남 22개 시·군을 순회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완전한 단죄와 헌법 전문에 5·18 정신 수록을 촉구하기 위한 자리다. 오프닝 무대는 김향미 시 낭송가의 한강 작가의 시 ‘회상’ 낭송으로 상영회 문을 연다.

박 감독은 “전남예고 학생들이 영화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역사와 인권의 의미를 체득하는 계기가 됐을 터다. 지역을 아울러 기억의 문제를 다음 세대의 몸을 통해 이어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공동체적 퍼포먼스로 이해하면 된다”며 “광주와 전남이 통합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헌법 전문에 5·18 정신 수록을 촉구하기 위해 상영회를 릴레이 형식으로 열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다음 시리즈 작품은 한국판 안네의 일기처럼 1980년 5월 당시 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5·18을 소재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계속 선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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